[취재일기] 정부가 우유값까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 김영훈 경제부 기자

여당과 농림부는 13일 우유업체에 낙농가의 원유(가공 전 우유)를 지금보다 13% 비싸게 사주라고 주문했다. '유도''중재' 등의 표현을 사용했지만 사실상 가격 인상을 당정이 결정한 것이다.

계획경제 체제도 아닌데 당정이 나서서 납품가를 정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농림부는 그동안 "납품가가 생산비보다 22% 더 높기 때문에 가격 조정 요인이 없다"면서 낙농가의 원유가격 인상 요구를 반박해 왔는데 돌연 태도를 바꾼 것이다.

이는 정치권과 정부가 시장에 맡길 일을 계속 움켜쥐고 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정부가 원유 가격을 고시하는 제도는 5년 전에 이미 폐지했다. 그러나 낙농가들은 안전망을 요구했고, 표를 의식한 국회는 납품 가격을 결정하는 기구인 낙농진흥회를 만들도록 법을 고쳤다. 정부도 이를 받아들였다. 진흥회는 명목상 업계 자율기구지만 정부의 역할을 전제로 한 조직이다. 낙농가들은 가격 협상을 할 때마다 우유업체가 아닌 정부에 매달렸다.

수급에 따라 결정돼야 할 원유 가격을 특정 기구에서 결정하는 구조는 오래 가지 못했다. 우유가 남아돌면서 정부는 진흥회 가입 농가에 감산을 권유했고, 상대적으로 장사를 잘하던 서울우유는 진흥회를 탈퇴했다. 이 과정에서 70%였던 낙농가의 진흥회 가입 비율이 27%로 줄어 공급 조절 기능마저 사라졌다.

우유가 남아도는데 가격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다 보니 정부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5년간 낙농 관련 기금 손실액은 3500억원이 넘는다.

농림부는 2006년까지 우유업체와 낙농가가 직거래하는 체제를 만들겠다고 한다. 5년 전에 했어야 할 일을 이제야 하겠다는 것이다. 그 사이 소비자들은 세금으로 우유 과잉생산을 뒷수습해 왔다.

김영훈 경제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