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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 몸&맘] “내 자식 맞나” 유전자 검사, 100% 정확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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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병원 진료실엔 간혹 분노에 찬 아버지가 건강해 보이는 자녀와 함께 진료실을 찾는 일이 있다. 이때 따라온 아이가 풀 죽은 표정으로 눈치만 살핀다면 대개는 친자 감별을 원하는 경우다.

유전자 검사법 개발 이전에는 친자 감별을 위해 ABO형·MN형·P(Q)형·S형·E형·Rh형 등 여러가지 혈액형 검사가 동원됐다. 물론 부정확하다. 예컨대 어머니가 A형, 아버지는 O형일 때 자녀가 AB형이나 B형이면 친자관계는 아니다. 하지만 자녀가 A형 혹은 O형이라도 반드시 친자는 아니다. 따라서 혈액형 이외에 지문(指紋)·장문(掌紋)·족문(足紋)에 얼굴이나 모발의 특징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됐다.

유전자 검사법은 이런 고민을 덜어준 획기적인 방법이다.

친자감별법 이전에 60억 인구 중 내가 지구촌 유일한 존재임을 확인해 주는 개인 식별법이 있다.

인간은 세포로 구성되며, 세포에는 핵이 있고 그 안에 유전자가 존재한다. 유전자는 유전 정보를 갖는 부위와 사람을 식별하는 유전자(STR 유전자)로 구성된다. 개인 식별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이 STR 유전자가 ‘특정’한 염기서열을 반복하기 때문인데 수많은 유전자 중 단 15개만 확인해도 개인 식별은 가능해진다.

학문적으로 남이 나와 동일한 유전자를 가질 우연은 10의 17제곱분의 3.67이다. 이는 지구촌 인구보다 500만 배 많은 인간이 존재할 경우 한 명 있을 수 있는 확률이다. 즉 유전자 검사를 통해 개인 식별은 100% 가능한 셈이다. 이런 이유로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혈흔·머리카락(모근)·정액 등은 범인을 찾는 단서를 제공한다.

친자 감별은 개인 식별법에 멘델식 유전 법칙을 가미한 검사법이다.

어머니가 확실하고 아버지를 확인해야 할 경우에 당연히 틀릴 가능성이 없다. 부모가 없는 상황에서 형제임을 확인하고자 할 때에도 검사 대상 유전자 숫자를 늘리면 확실해진다.

예컨대 친자 감별 때 15개의 유전자를 검사한다고 가정하면 형제 식별 땐 30개 유전자를 검사하면 되는 식이다. 유명인 사망 후 혼외정사로 태어난 딸이 유산 분배를 주장하며 이복 형제들을 대상으로 친자 소송을 해 큰 유산을 분배받은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법의학적으로 유전자 검사를 통한 친자 감별 결과가 다를 경우는 시료가 바뀌거나 이름이 잘못 기재된 경우 등 행정적인 오류가 생겼을 때 뿐이라고 한다.

이달 중순 30대 중반의 재미동포 여성이 현직 장관을 상대로 “딸임을 인정해 달라”는 친자 확인 소송을 내 지난 9월 1심에서 승소했다. 특히 해당 장관이 “자신의 딸이 아니다”며 항소심 재판을 진행하자 친자 감별 검사의 정확성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21세기 현대의학이 제시한 유전자 분석의 도움을 받으면 친자 감별 여부는 명확하게 밝혀진다.

따라서 진심으로 친자 여부를 밝히고 싶을 땐 소송이란 복잡한 절차 대신 유전자 검사를 받으면 된다. 입안 점막 세포를 묻히는 간단한 방법으로 반나절도 못 돼 결과가 확인되며, 비용도 소송비의 10분의 1 정도인 수 십만 원에 불과하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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