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나이 제한 없애니 남성 ‘고시 장수생’ 강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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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거세게 몰아치던 고시에서의 ‘여풍(女風)’이 주춤해졌다. 행정안전부는 올해 행시(행정직) 최종 합격자 244명을 26일 발표했다. 1만821명이 응시해 4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 올해 시험에서 여성 합격자는 114명으로 46.7%를 차지했다. 수석합격의 영광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홍가영(28·여)씨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여성 합격자 비율은 지난해(51.2%)보다 4.5%포인트 떨어졌다.

행안부 최낙영 채용관리과장은 “올해 시험에서는 1, 2차 필기시험에서 여성들의 성적이 예년보다 상대적으로 저조해 합격자 비율이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1, 2차 시험을 통과한 사람 가운데 여성은 142명으로 48.1%를 차지했다. 그러나 올해는 42.8%에 그쳤다.

6월 발표된 외무고시 합격자에서 여성이 차지한 비율은 더 큰 폭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65.7%였던 것이 올해는 전체 합격자 41명 중 20명으로 48.8%에 머물렀다.

행시의 경우 1992년 여성 합격자는 3.2%에 그쳤다. 95년에 처음으로 두 자릿수 비율(10.4%)을 기록했고, 99년 17.0%를 기록한 뒤부터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이처럼 공무원 시험에서 여성 합격자 비율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현상이 생겨났다. 중앙공무원교육원은 올 초 여성 연수생들을 위해 10명 이상이 한꺼번에 이용할 수 있도록 여성 화장실을 늘리는 공사를 했다. 외교통상부는 올해부터 여성 외교관에게 오지 근무와 숙직을 담당하도록 바꿨다.

행안부 관계자는 고등고시에서 여성들이 주춤하게 된 이유 중 하나로 응시상한 연령제 폐지를 들고 있다. 외무고시는 올해부터 30세 이상, 행정고시는 33세 이상도 응시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행시 응시생 중 남성 비율은 지난해 61%에서 올해 62%로 늘었다. 합격자 평균 연령도 26.5세로 지난해보다 0.4세 높아졌다.

고시를 오래 준비해온 남성 ‘장수생’의 저력은 수치로 확인됐다. 올해 행시 합격자 중 33세 이상 합격자 9명 중 8명이 남성이었다. 외무고시에서는 합격자 41명 중 30세 이상의 합격자 2명이 모두 남성이다.

고시전문학원 배리타스 정하영 부원장은 “여성은 30세 이후 고시 공부를 하는 것에 남성보다 더 많이 부담감을 갖는다”며 “다년간 고시를 준비해온 ‘장수생’ 중 남성이 많고 이들이 행시와 외시에서 성과를 내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 같은 추세가 계속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최낙영 과장은 “올해 외무고시 결과를 분석한 결과 불합격자 중 고득점자 비율은 여성이 높았다”며 반등 가능성을 시사했다.

사법시험에서도 여성 합격 비율이 소폭 감소했다. 지난해 38%까지 올랐던 여성 합격자 비율은 올해 35.6%로 떨어졌다. 정 부원장은 “여성들의 로스쿨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사법시험에 응시하는 여성이 줄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7급 공무원 시험에서는 응시상한 연령제 폐지 효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합격률이 올라갔다. 2만8957명이 응시해 591명이 합격했다. 이 중 여성이 206명으로 합격자의 34.9%를 차지했다. 지난해는 31.5%였다. 36세 이상 합격자는 남성이 55명, 여성이 6명이었다. 최종 합격자의 평균 연령은 29.9세로 지난해 29.7세에 비해 높았다.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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