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신앙] 가양동 성당 김종국 신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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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기독교 2천년 문화를 집대성한 로마에서 국악 성가가 울려 퍼진다.

가톨릭 우리소리관현악단과 삼성무용단은 제47차 로마 세계성체대회의 공식 초청을 받아 6월25일 로마 라테라노 산 조반니 대성당에서 교황과 세계 가톨릭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관현악.무용.성악 등을 우리 가락과 옷으로 선보인다.

1994년 우리소리관현악단을 창단하는 등 가톨릭 토착화에 앞장서온 천주교 서울 가양동 교회 김종국(金鍾國)주임 신부의 노력이 가톨릭 심장부에서 열매를 맺은 것이다.

"매 50년을 기념하는 가톨릭의 대희년에 천주교가 우리 종교로 우뚝 섰다는 것을 인정받는 것 같아 더욱 기쁩니다. 우리 뿌리, 핏줄과 정서에 맞아야 삶 속에 파고드는 종교가 되지요. 그렇지 않으면 의례적 행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

77년 사제 서품을 받은 김신부는 교리가 아무리 고귀할지라도 우리 정서에 맞아야만 생활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토요일마다 도포에 갓을 쓰고 한국 미사를 집전한다. 가양동 성당 마당에는 성모 마리아상과 함께 직접 깎은 장승 한쌍이 서 있다.

"한국 천주교는 외국 선교사들이 들어와 전한 것이 아닙니다. 2백여년 전 우리 조상들이 중국 등지로 나가 그곳에서 세례받고 들여와 능동적으로 퍼뜨린 것입니다. 그 후 외국에서 사제가 들어와 제사나 굿을 미신으로 터부시하면서 수많은 박해를 불렀지요. "

김신부는 무당의 굿마저도 판을 벌여 민족의 한을 시원스레 풀어주는 총체적 한국문화로 본다. 우리 핏속을 면면히 이어온 것들을 터부시한다면 종교가 도대체 우리의 삶 속에서 무슨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김신부는 서울 영등포에 토마스의 집을 짓고 10여년간 매일 3백여명의 행려병자들에게 밥을 지어주고 있다. 똥을 싸고 뭉게는 마지막 인생들하고 밥도 같이 먹고 목욕도 시켜주고 머리도 깎아준다. 영등포 교도소 종교위원으로 재소자와 출소자의 뒷바라지도 한다.

"예수께서는 봉사를 받으로 온 것이 아니라 하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하물며 사제가 어떻게 군림하겠습니까. 행려병자.재소자들과 함께 하다보면 그들이 나보다 훨씬 더 고귀하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됩니다. 성경 말씀이나 뜻이 높은 위치에서 생활 속으로 내려올 때 종교는 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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