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호 기자의 레저 터치] 볼 수 있어도 찍을 수 없는, 정말 이상한 북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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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손민호 기자

지지난 주 책 한 권이 배달됐다. 토니 휠러의 여행서 『나쁜 나라들』이다. 토니 휠러는 세계 최대의 여행 출판사 ‘론리 플래닛’의 창업주다. 1972년 처음 세계여행을 시작했고, 세계적인 재벌이 된 지금도 1년의 태반은 여행 중이다. 토니 휠러는 올해 63세다.

『나쁜 나라들』을 꼼꼼히 읽어 본 건 그 책에 북한 여행기가 실려 있어서다. 그는 ‘이상하고 황당하며 초현실적인’ 나라 9개를 꼽으며 북한을 ‘다른 나라보다 훨씬 우위에 있는 최고로 이상한 나라’라고 적었다. 그가 가장 당황했던 풍경이 차 없는 길이었다. 도로는 뻥 뚫려 있었지만 그는 길 위에서 10분을 기다려야 차 한 대를 구경할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나도 2005년 북한을 갔을 때 비슷한 경험을 했다. 평양에서 버스를 타고 묘향산으로 가는 길, 안내원 동무들이 버스 창문의 커튼을 모두 내리라고 지시했다. 보여 주는 것만 보라는 그들의 지시는 차라리 우스꽝스러웠다. 그래도 틈틈이 커튼을 살짝 열고 창문 너머를 훔쳐봤다. 차는커녕 사람도 볼 수 없었다. 일행이 탄 버스 말고 살아 움직이는 건 없었다. 난감할 만큼 적막한 풍경. 토니 휠러가 말한 대로 초현실주의 작품에서나 봤음 직한 기이한 장면이었다.

지난주 강화도로 취재를 갔다. 원래 계획은 남쪽 해안을 훑는 것이었지만 섬 안에 들어가 계획을 틀었다. 강화도 북쪽 민통선 지역 안에 평화전망대가 개장했는데 사전 허가 없이 쉽게 갈 수 있다는 섬 주민의 귀띔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어서 생생한 북한의 늦가을 풍경을 잡을 수 있겠다 싶어 부리나케 달려갔다.

하나 현장에서 가로막혔다. 사전 허가 없이 취재는 불가하다며 해병대가 앞을 막아섰다. “바로 전에 통과한 매표소에선 사진 찍어도 된다고 했는데요”라고 물어도 “매표소에서 잘못 안 겁니다”며 요지부동이었다. 해병대 병사 둘이 내내 감시를 했고 어쩔 도리 없이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그래도 내친걸음이라 전망대에 올라갔다. 거대한 물길이 눈앞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이미 몸을 합친 한강과 임진강이 엄청난 덩치로 부풀어 올라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강 건너, 그러니까 눈앞에 펼쳐진 모든 산과 들과 길과 집은 북한의 것이었다. 왼쪽으로 예성강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정면으로 개성의 송악산이 뚜렷이 서 있었다.

토니 휠러는 남북의 판문점을 모두 방문한 뒤 “하나의 방 안에 남쪽으로 난 문과 북쪽으로 난 문이 따로 있는데 남쪽 문은 남한을 통해서만 들고 나갈 수 있고 북쪽 문은 북한을 통해서만 들고 나갈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이상한 일입니까?”라고 꼬집었다. 이상한 일은 비단 판문점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닌가 보다. 강 건너 풍경을 바라볼 수는 있어도 사진은 찍을 수 없는 전망대도 이상하긴 마찬가지니 말이다. 초현실주의적 풍경은 의외로 흔하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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