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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홧김 살인'…못참는 디지털 세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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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H아파트에서 발생한 여중생 살해 사건의 범인은 중학교 3학년이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꾸중을 들은 뒤 '화를 풀기 위해' 범행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가정 폭력에 대한 스트레스와 청소년을 충동적 성격으로 만드는 디지털문화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가정폭력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고 그들이 사회에서 받는 중압감을 건전하게 배출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 범행〓서울 서대문경찰서는 19일 숨진 宋모(12.중1)양과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C군(15)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C군은 15일 오후 5시40분쯤 H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귀가 중이던 宋양을 뒤따라가 승강기에 같이 탄 뒤 宋양이 11층에서 내리려는 순간 가지고 있던 흉기로 목을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승강기의 폐쇄회로(CC TV)에 잡힌 범인의 모습을 분석해 중학생인 점을 확인, 인근 학교를 탐문 수사해 모습이 비슷하고 운동화에 혈흔이 있는 C군을 검거했다.

◇ 범행 동기〓C군은 경찰에서 "아버지(51.상업)가 술에 취해 어머니와 누나에게 욕설을 퍼부어 이를 말렸으나 오히려 성적 문제로 꾸중했다" 며 "이에 갑자기 화가 나 부엌에서 흉기를 들고 나와 단지 일대를 배회하던 중 전혀 모르는 여중생을 발견, 우발적으로 살해했다" 고 진술했다.

C군은 범행 후 흉기를 6층 통신단자함에 숨긴 뒤 곧장 귀가했으며 태연하게 학교에 다녀왔다.

C군은 학교 성적은 하위권이나 학업태도나 교우관계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담임교사 朴모(38)씨는 "학교성적이 낮긴 했지만 학교 생활은 모범생이라고 할 만했다" 고 말했다.

◇ 원인.대책〓서울대 심리학과 김명언(金明彦)교수는 "이번 사건은 미국에서 자주 발생하는 10대 총기난사 사건과 유사한 성격을 띠고 있다" 며 "행위의 '즉각성' 을 특징으로 하는 디지털문화에 익숙한 10대가 자신의 불만을 즉흥적으로 표출한 사례" 라고 분석했다.

아주대 의대 소아정신과 오은영(吳恩瑛)교수는 "요즘 청소년들은 폭력적인 PC게임에 익숙해 있는 데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놀이문화가 사라지면서 인간관계에서 자기 억제력을 급속도로 상실해 가고 있다" 고 진단했다.

청소년보호위 강지원(姜智遠)위원장은 "폭력적인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을 사회적 보복으로 나타낸 사건" 이라며 "가정과 학교에서 받는 엄청난 스트레스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할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고 강조했다.

이무영.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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