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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는 와인 맛과 향 비결은 완벽주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프랑스 보르도 와인 명가인 샤토 라투르의 프레데리크 앙제레(오른쪽) 대표와 오너인 프랑수아 피노 회장의 막내딸 플로랑스 로저 피노.

프랑스 보르도 와인 명가 ‘샤토 라투르’의 프레데리크 앙제레(46) 대표는 와인 업계에서 ‘깐깐하고 꼼꼼한 남자’로 소문이 나있다. 최근 소비자들과의 만남과 시음회 행사를 위해 방한한 그는 “포도의 작황은 신의 영역이지만 명품 와인을 빚는 건 인간의 몫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양조시설은 물론 포도 재배 방법, 나아가 샤토 라투르를 찾는 고객의 특성까지 일일이 챙긴다고 한다. “포도 작황이 매년 달라도 와인의 품질은 균일하게 유지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러려면 미세한 부분까지 놓칠 수 없습니다. 명품은 사실 그러한 정성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서울에서 최근 열렸던 시음회에서 앙제레는 “잔에서 희미한 먼지 냄새가 난다” “와인의 온도가 약간 높다”는 등 까다로운 지적을 연방 하면서 ‘품질에 영향을 주는 것은 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다’는 경영 철학을 보여줬다. 그는 “이런 완벽주의가 수 세기 동안 명성을 쌓아온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에서 이 브랜드의 인지도가 올라간 계기는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오찬에 내놓으면서다. 보르도 1등급 중에서도 샤토 라투르는 묵직하고 남성적인 맛이 특징이다. 앙제레 사장은 “샤토 라피트 로실드가 부드럽고 둥근 이미지인 반면, 샤토 라투르는 힘이 넘치는 스타일”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샤토 라투르 와인은 숙성 기간이 적어도 10년은 필요해 인내심이 필요하지만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앙제레 사장은 원래 경영 컨설턴트였다가 95년 샤토 라투르에 합류, 98년부터 대표를 맡고 있다. “컨설턴트 시절에도 와인 저장고를 따로 집에 만들어놓고, 좋은 와인을 구해서 마셨어요. 남프랑스에서 와인 판매업을 했던 부모의 영향도 있습니다.” 그는 대표가 된 뒤 양조시설을 현대화했고, 양조탱크도 스테인리스스틸로 바꿨다. 그의 요즘 고민은 포도 재배의 방식이다.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유기농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가축과 인력으로 전통 방식으로 농사 짓는 방법도 궁리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트랙터 대신 말 두 마리를 들여와 땅 다지기 작업을 했어요. 이런 일련의 실험은 샤토 라투르의 앞으로의 수백 년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미세한 부분에서 맛과 향이 달라지는 게 포도주이니까요.”

샤토 라투르는 프랑스 유통그룹 PPR의 창업자인 프랑수아 피노 회장이 1993년 인수했다. PPR은 구찌·입생로랑·보테가베네타·크리스티경매 등의 명품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앙제레 대표의 방한에는 피노 회장의 막내딸인 플로랑스 로저 피노(45)가 동행했다. 샤토 라투르에서 피노 가문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며 홍보도 맡고 있다. 그는 “아버지는 샤토 라투르가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48시간 내에 사들이겠다고 결심했다”고 소개하면서 “샤토 라투르는 아버지가 마음 속으로부터 특별히 아끼는 자산”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와인 소비자층은 최근 몇 년 사이 기호도 다양해지고 성숙해졌다”며 “최근 세계 경제 침체의 여파로 와인 가격이 내려간 반면 품질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니 소비자들에겐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보르도 1등급 와인=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앞두고 보르도 상공회의소는 지역 와인에 등급을 매기기로 했다. 1만 개가 넘는 종류 중에서 61개만이 최고인 ‘그랑 크뤼’ 판정을 받았다. 이를 다시 5개 등급으로 나눴고 샤토 라투르와 샤토 라피드 로실드, 샤토 마고, 샤토 오브리옹 4가지만 1등급에 선정됐다. 2등급이었던 샤토 무통 로실드는 73년 1등급으로 상향 조정됐다. 이렇게 보르도 1등급 5대 샤토가 정립돼 오늘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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