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과학 칼럼

아기 예수와 지구온난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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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기상이변을 몰고 오는 대표적인 요인 중의 하나로 이른바 엘니뇨 현상이 꼽힌다. 올 겨울철 역시 엘니뇨 현상이 절정에 달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날씨와 기후가 더욱 사나워질 것이라 한다.

엘니뇨란 구체적으로는 동태평양 지역인 남아메리카 페루와 에콰도르 서부의 열대 해상에서 수온이 평년보다 높아지는 현상을 지칭한다. 남아메리카의 서부 연안은 무역풍과 해류에 의해 심층의 차가운 바닷물이 올라와 연중 수온이 낮고 영양염류가 풍부해 좋은 어장을 이룬다.

그런데 무역풍과 해류의 힘이 약해지면 적도 부근의 따듯한 해수가 몰려와 온도가 올라가면서 여러 이상 현상들이 발생한다. 바다의 영양염과 용존 산소가 감소해 어장은 황폐화되고, 상승기류로 인해 남아메리카의 인근 지역에는 폭우와 홍수 등이 잦게 되며, 다른 지역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엘니뇨 현상인데 원 단어의 뜻을 잘 살펴보면 뭔가 암시하는 바가 있는 듯도 싶다.

엘니뇨(El Nino)란 원래 스페인어로 남자아이를 뜻하는데, 구체적으로는 ‘크리스마스의 아이(El Nino de Navidad)’의 준말이라고 한다. 즉 신의 아들인 아기 예수를 뜻하는 셈인데, 엘니뇨 현상이 매년 12월 말의 성탄절 즈음에 맞추어 발생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스페인어권인 페루의 어부들은 옛날부터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폭우 등에 의한 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아기 예수가 온다!(¡Viene el Ni<00F1>o!)”고 말하면서 두려워했다고 한다.

인류를 구원하러 와야 할 아기 예수가 무서운 기상이변과 재해를 몰고 나타난다는 것이 매우 역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혹 환경파괴와 지구온난화 등으로 인한 전 지구적 재앙을 미리 인류에게 경고하기 위해 오는 것은 아닐까?

물론 지구온난화와 엘니뇨가 직접 관련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지구온난화에 의한 이상기후 현상들이 거론되기 훨씬 오래전부터 엘니뇨 현상은 발생한 바 있다. 그런데 근년에는 남동태평양뿐 아니라 태평양 중앙에서도 엘니뇨가 가끔 발생하는 등 변화가 생겼는데, 이것이 지구온난화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밝혀냈다.

즉 한국해양연구원의 연구진은 엘니뇨의 발생 장소가 이동한 이유가 대기 중 이산화탄소 증가로 인한 지구온난화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를 최근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또한 미국 연구진은 새로운 엘니뇨가 대서양의 허리케인 발생 빈도를 높인다는 주장도 했는데, 이들 신종 엘니뇨는 ‘유사한 것’을 의미하는 일본어 접미어를 붙여서 ‘엘니뇨 모도키(El NiñoModoki)’라 불린다.

누구나 기상이변 등은 떠올리지 않고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복하는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맞고 싶겠지만, 올 겨울철의 날씨 역시 그리 순탄하지 않다면 그것은 인과응보(因果應報)일까?

최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