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치해야 기업이 잘 된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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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박상희(朴相熙)회장과 다수 간부들이 민주당에 무더기 입당한 것은 그 배경과 과정에서 모두 커다란 문제를 낳고 있다. 실정법의 정신을 어겨가면서까지 중소기협이라는 이익단체를 정치에 끌어들이는 朴회장이나 민주당 모두가 너무 무리를 범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朴회장측과 민주당은 위법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명백한 중소기업협동조합법 취지를 위배한 것이라고 본다. 중소기협법 제7조 2의 1항은 '조합 또는 중앙회는 정치에 관한 모든 행위를 할 수 없다' 고 분명하게 규정해 놓고 있다.

다만 임직원의 정치행위를 규제한 2항은 1982년 개정시 삭제해 개인자격의 정치는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중앙회 간부 30여명과 산하 조합이사장 1백80여명을 비롯한 회원 3백여명이 무더기 입당했는데 형식상 '개별적' 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은 제7조 2의 1항이 규정한 정치활동금지의 법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중소기협 정관 제3조 2가 '본회는 정치에 관한 모든 행위를 할 수 없다' 고 규정하고 있는 것을 봐도 중소기협이나 임직원이 정치활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명백하다.

朴회장은 입당 동기를 '중소기업계의 소망을 잘 대변하고 실현시키기 위한 것' 이라지만 그렇다면 모든 이익단체들이 그들의 의견반영을 위해 정당에 들어가야 한단 말인지, 정경유착을 해야 기업이 잘된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못할 소리만 해대고 있다.

그런데도 朴회장은 한술 더 떠 입당 기자회견을 하면서 아예 민주당에 대한 지지 표명과 지지권유 발언까지 함으로써 선거법 위반 시비까지 일으키고 있다.

이번 무더기 입당 사태를 두고 朴회장 소유 기업이 워크아웃 상태인 것과 관련이 있다느니, 신변문제 등과 관련해 여러가지 추측들이 나돌고 있다는 것은 그 과정과 절차가 정상적이지 못하고 석연찮은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무리수를 강행한 민주당의 의도도 이해할 수 없다. 경총의 정치간여 의사 표시에 집단이기주의라며 발끈했던 게 누구였나. 최근 장태완(張泰玩) 재향군인회장, 박인상(朴仁相) 한국노총위원장을 입당시키는 등의 행위는 이익단체나 관변단체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과거 권위주의 통치시절 각종 단체를 무리하게 동원했던 사례들을 상기시킨다.

이것은 자칫하면 새로운 형태의 행정선거.관권선거의 시비를 낳을 우려가 있다.

선관위는 중소기협의 이런 행위가 선거법에 위배되는지를 엄중하게 따져봐야 할 것이며 중소기협도 이와 같은 상궤를 벗어난 행위를 즉각 중지하고 중앙회장 등 정치활동을 한 임직원들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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