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판정 서는 ‘알카에다의 마타하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무슬림 전사인가, 미국 첩자인가. 한 여성 테러리스트의 ‘사라진 5년’이 미스터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24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37세의 파키스탄 여성 아피아 시디퀴(사진)는 지난해 7월 아프가니스탄 가즈니에서 체포돼 미국 뉴욕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수사 당국은 그가 자유의 여신상 등을 목표로 한 공격 계획 문서와 화학물질들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체포된 뒤 자기를 조사하던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의 총을 뺏어 총격전을 벌인 혐의도 받고 있다.

시디퀴는 한때 ‘알카에다의 대모’로 불렸다. 파키스탄 상류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뛰어난 성적으로 미국 MIT에 입학해 신경과학자가 됐다. 하지만 독실한 무슬림이었던 그는 곧 반미 운동가로 변신했다. 그가 일하던 구호단체들은 테러 배후 혐의로 활동이 금지됐다. 2001년 9·11 테러가 터지자 시디퀴는 미 정보당국의 표적이 됐다. 2003년 FBI가 시디퀴 부부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자 그는 자신의 세 아이와 종적을 감췄다.

이후 체포될 때까지 5년간의 행적에 대해 시디퀴는 법정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 환각을 일으킨다며 정신감정을 요청해 6개월간 재판을 연기하기도 했다. 병원은 ‘꾀병’으로 진단했다. 시디퀴의 체포 현장에 함께 있던 11세 맏아들 역시 입을 닫고 있다. 나머지 두 아이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5년 동안 어디서 무얼 했나=서방 언론은 시디퀴를 ‘알카에다의 마타하리’라고 부르며, 그가 알카에다의 스파이 또는 미국과도 거래한 이중간첩으로 활동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시디퀴가 잠적한 직후 9·11 주범으로 조사받던 할리드 셰이크 모하메드가 그의 거처를 실토해 파키스탄 정보당국에 붙잡혔다는 보도도 나왔다. 시디퀴의 숙부는 지난해 초 시디퀴가 파키스탄 자신의 집으로 찾아와 “계속 감옥을 옮겨다녔고 최근 알카에다에 침투하라는 지령을 받고 풀려났다”며 “아프간 탈레반으로 도망치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파키스탄의 한 관리는 “이중간첩이 횡행하는 지금 시디퀴는 엄청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미 정부는 시디퀴가 이 기간 중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테러를 획책했다고 주장했다. 미 법무부는 2004년 체포되지 않은 핵심 알카에다 조직원 7명 중 1명으로 그를 지목했다.

시디퀴의 가족들은 그가 5년간 아프간 내 미군의 바그람 수용소에 억류돼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의 언니 푸지아는 “미국이 잘 짜인 연극에 동생을 희생시키려 한다”고 비난했다. 

이충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