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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우울증 사각지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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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전형적 특징은 이렇다. 처음에는 우울감이 원래 감정과 다르다는 것을 구별할 수 있었다. 그 다른 느낌을 극복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 느낌이 오래 지속되고 우울한 감정에 휩싸여 살다 보면 문제가 광범위해진다. 우울증적 생각과 행동이 자기 성격같이 굳어져 버린다. 특히 성격 형성에 중요한 시기인 20대 초·중반을 치료받지 않은 우울증을 가진 채 오랜 시간이 경과하면 도대체 무엇이 정상적인 감정인지 기준점을 잊어 버려 우울함이 성격의 배경색과 같이 된다. 그래서 치료 후에 호전이 된 다음에도 도리어 “너무 들뜬 것 같아요, 이상해요”라며 어색해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곧 다시 우울의 늪으로 빠져들려 한다.

20대의 우울증상이 성격화가 될 때까지 병이 깊어지는 원인은 무엇일까. 찬찬히 이 친구들과 상담을 하다 보니 최근의 대학문화나 도시적 라이프스타일과 연관이 깊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방학생들의 경우 예전에는 하숙을 하거나 기숙사에 들어가는 일이 많았다. 그때에는 최소한 하숙집 아주머니나 사감이 신경을 써주고, 아주 부잣집 학생이 아니면 대부분 룸메이트가 있었다. 하숙집에서 밥은 같이 먹고 누가 옆방에서 사는지는 알고 지내고 그 인연으로 평생 친구가 된 이들도 여럿 있었다. 그러니 어느 한 사람이 표정이 안 좋거나, 힘들어 하면 옆에서 챙겨 주고, 문제가 발생하면 빨리 조치가 가능했다. 그런데 요즘 학생들이 선호하는 주거환경은 아무리 작아도 원룸이다. 고시원도 원룸화되어 있다. 옆에 누가 들어왔다 나가는지 알 수 없고, 알려고 하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학부제가 되면서 모집단위가 커졌다. 저학년 때에는 소속감을 느끼기 어렵고, 선후배 관계도 전보다 희박해졌다. 게다가 세칭 ‘반수’와 편입학이 일상화되면서 연락이 안 되면 다른 공부를 시작했나 보다 하고 미리 짐작을 해버린다. 이게 요즘 관계의 특성이다. 그리고 그게 ‘쿨 라이프’라고 여긴다. 문제는 그러다가 얼어 죽는 사람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또 깊은 감정의 부딪힘을 경험해 보지 않으니 작은 갈등에도 와장창 무너져 버리기 쉽다. 그렇게 시작한 우울증이 깊어지면서 몇 달간 원룸에서 나오지 않고 인스턴트 식품과 술만 마시면서 지내는 20대가 많다. 밖에서는 누구도 그의 상태를 모르고 관심도 없다.

결국 학기가 끝날 때쯤 행정실에서 집으로 연락이 가 진상이 밝혀지는 경우가 많다. 그때에는 이미 마음의 병은 깊어져 있고 치유는 그만큼 어렵다. 현대 도시의 삶은 ‘쿨’을 기조로 하고, 개인의 삶을 존중한다. 그러나 그 개인적 삶 속에서 곁불마저 쬐지 못해 마음이 쪼그라들어 얼어붙은 20대들도 한편에서 늘고 있다. 도시적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가 우울증의 사각지대를 만들고 있다.

하지현 건국대 의대교수·정신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