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촌구석 학교 가냐고? 비행기 조종만큼은 제대로 배우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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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의 강호항공고 학생들이 모의 조종 프로그램인 ‘시뮬레이터’ 앞에서 비행 실습을 하고 있다. [고창=프리랜서 오종찬]

#1.“제 꿈은 푸른 하늘을 박차고 올라 멀리 날아보는 조종사예요. 세계 각국의 아름다운 여행지를 빠짐없이 가 보고 싶어요.”

전북 고창의 강호항공고 1학년 김형섭(16)군은 별명이 ‘꼬마 조종사’다. 중학교 3학년 때 국내 최연소 초경량 비행기(2인승)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비행기 조종시간은 100시간을 벌써 돌파했다. 그는 올 초 대구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강호항공고를 찾아왔다. 주변에서 “왜 촌구석의 학교를 가느냐”고 말렸지만 “원하는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며 이 학교를 택했다. 같은 반 학생 28명 대부분도 비행기를 좋아해 지원한 친구들이다.

형섭이는 졸업 후에는 자격증 특별전형을 통해 대학 항공과에 진학하거나 공군에 부사관으로 입대할 계획이다. ‘e-MU(군 사이버 대학)’ 제도를 통해 대학 졸업장도 딸 작정이다. 취업과 군대, 대학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셈이다. 지난 6일 이 학교 신입생 면접에는 전국에서 369명(정원 224명)이 찾아와 1.65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이종명 교감은 “대부분의 농촌 학교가 정원을 채우기 힘든 상황인데, 우리 학교에 서울·수도권에서 학생이 몰리는 것은 이변”이라고 말했다.

전북 고창의 강호항공고 학생들이 모의 조종 프로그램인 ‘시뮬레이터’ 앞에서 비행 실습을 하고 있다. [고창=프리랜서 오종찬]

#2. 부안군 줄포자동차고 2학년 김현호(17)군은 요즘 학교 실습장에서 살다시피 한다. 25일 전기용접기능사 자격증 실기시험이 있기 때문이다. 현호는 “A4용지 절반 크기의 철판 두 조각을 용접봉으로 매끈하게 연결하는 게 어렵다”며 “전류 조절을 잘해야지 잠깐만 한눈을 팔아도 철판이 녹아버리기 일쑤”라고 말했다. 현호는 지게차 운전기능사, 로더(중장비) 운전기능사, 굴착기 운전기능사, 자동차 정비기능사, 자동차 검사기능사 등 5개 자격증을 이미 땄다.

“정읍 시내 중학교에서 중·상위권 성적이었죠. 주변에서 도시 일반계 학교로 나가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어릴 때부터 물건 만드는 걸 좋아해 자동차고를 선택했어요.” 현호의 꿈은 자동차 정비사. 단순한 차 고장 수리뿐 아니라 튜닝 전문가·카레이서까지 겸한 한국 최고의 기술자가 되고자 한다. 시골 외지의 학교지만 도시 학생들의 비율이 50% 가까이 되고, 신입생 평균 경쟁률이 2대 1이나 된다.

말에 탄 채 말의 행동과 심리 특성을 체험하는 경마축산고 학생.

#3. 지리산 자락에 자리 잡은 남원시 운봉읍 준향리 경마축산고. 승마로 흠뻑 땀에 젖은 말의 구석구석을 꼼꼼히 닦아내던 김승현(17)양은 “틈날 때마다 말을 찾아와 먹이를 주고 얘기를 나누다 보면 말이 친한 친구처럼 느껴진다”며 “승마 교관이 돼 늘 말 곁에서 생활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모님들이 처음에는 인문계 학교를 가라고 권유했지만, 동물을 좋아하는 적성을 살릴 수 있다고 판단해 인천에서 왔다”고 말했다.

경마축산고는 몇 년 전만 해도 지원 학생이 정원(60명)의 10% 정도밖에 안 돼 “언제 문 닫을지 모른다”고 걱정하던 학교였다. 2003년 양돈·양계·한우를 가르치는 일반 축산과정을 정리하고 말(馬) 한 분야로 특성화면서 입학 신청자가 2~3배씩 몰리고 있다.

2학년의 경우 전체 24명 중 인근 전북 출신은 10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14명은 서울·부산·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왔다. 학생들은 마필관리사·기수·승마 선수·교관으로 진출한다. 최준호 교사는 “마사회나 승마장·경마장으로부터 학생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줄을 잇는다”며 “학생들이 돈보다는 미래가 보장된 직업을 선호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장대석 기자

특성화 고교 어떤 게 있나
골프·만화·디자인 … 매년 30 ~ 40개 늘어

특성화고교는 전문계고(옛 실업계고) 중에서 자동차·골프·만화·조리 등 특정 분야의 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만들었다. 1998년 부산의 디자인고교가 문을 연 이후 전문계고교(691개교) 중 38%인 262개 교가 특성화고로 간판을 바꿔 달거나 신설됐다.

4~5년 전만 해도 100개교 미만이었지만, 정부가 2006년 특성화고교 육성정책을 발표하면서 일년에 30~40개 교씩 늘고 있다. 초기에는 교과부가 학교지정 권한을 가졌지만 지금은 시·도 교육청으로 넘겼다.

이들 특성화고는 교과과정을 산업현장에서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인력양성에 맞춘다. 기업체 눈높이를 겨냥한 맞춤식 교육과정 덕분에 잘 나가는 곳은 취업률이 80~90%까지 올라가는 학교도 있다.

특성화고로 지정받으면 지역에서 벗어나 전국 단위로 학생을 모집할 수 있다. 교과 과정도 자율적으로 편성할 수 있다. 또 기자재 구입비, 취업 활성화 등 명목으로 1년에 5000만~1억원 추가 인센티브를 받게 된다.

교과 특성화는 지역별 산업구조에 맞춘다. 충청 지역은 20여 개 학교가 전자·철강·반도체·정보기술(IT)·바이오 등 분야로 특화돼 있다. 경남은 조선·캐드(CAD)·자동차·메카트로닉스 분야가 많고,제주도는 관광·골프인력 양성 학과가 인기다.

특성화 학교의 성공을 위해서는 시대 트렌드를 잘 읽고, 그에 주파수를 맞추려는 노력이 선결과제로 꼽힌다. 항공 특성화고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는 고창 강호항공고의 강인숙(54) 교장은 “시대가 바뀌는데 같은 레퍼토리만 읊어 대면 퇴출되는 것은 기업이나 교육이 같은 원리”라며 “학교가 도태되지 않으려면 지속적인 혁신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1979년 설립한 이 학교는 30년간 상고→상공고→사이버고→항공고로 변신을 거듭했다. 이름뿐 아니라 학교 구조나 교과과정도 확 뜯어 고쳤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신입생 미달로 허덕이는 다른 농촌학교와 달리 이 학교는 전국에서 학생들이 찾아오는 학교로 탈바꿈했다.

김방현 기자,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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