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수 기자
이틀 뒤면 전역하는 병사도 주먹밥 먹으며 전차에 올랐다
“현 시간부로 부대 이동을 실시한다. 이동 순서는 1소대, 2소대, 3소대. 이동간 적의 특수작전부대의 이동이 예상되니 소대별로 할당 구역을 철저히 경계하기 바란다. 부대 이동!”
3일 오후 3시 충북 음성군 금왕읍 인근. 우리 군의 야외 기동훈련인 호국훈련에 참가 중이던 청군 전차부대 중대장의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부르르르르르릉~.”
1 2009 호국훈련에 참가한 26기계화보병사단 전차부대가 충북 장호원에서 경기도 여주로 향하고 있다. 이 부대는 8사단 주축인 청군에 소속돼 작전을 펼쳤다.
조종수(하사)가 시동 버튼을 누르자 굉음에 가까운 K-1 전차의 엔진소리가 뿜어져 나왔다. 청군(8사단+26기계화 보병사단 일부) K-1전차, 구난 전차, 장갑차, 대공 방어용 비호 장갑차 등 전차부대 행렬은 이날 다음 집결지인 장호원으로 향했다. 장호원과 여주를 거쳐 남한강을 도하하는 43㎞ 기동작전이었다. 대항군인 황군을 격퇴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초 전차부대는 오전 10시에 출발해 오후 2~3시 목적지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전방에서 보병들의 전투가 지속되는 바람에 오후 3시가 넘어서야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보병이 남한강을 넘었지만 방어 중인 황군의 저항이 만만치 않아 진격이 예정보다 늦어진 것이다. 장병들은 그새 외부 바람만 막아주는 천막 안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전차를 정비하는 등 출동에 대비하고 있었다.
식사는 전투식량과 주먹밥으로 해결
2 김치와 쇠고기·당근 등을 넣어 만든 주먹밥. 부대 측은 추운 날씨를 감안해 기자에게 즉석라면과 구운 김을 특식으로 제공했다. 3 전차부대 대열이 서 있는 동안 K-1 전차 포탑 위를 살펴봤다.[육군 제공]
이날은 갑자기 기온이 떨어진 데다 바람이 불어 체감온도가 영하 5도를 밑돌았다. 천막만 친 채 땅바닥에서 새우잠을 청하며 출동 명령을 기다리던 전차부대 장병들은 추위에 얼어 있었다. 하루하루 이동하다 보니 잠자리나 조리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식사도 전투식량과 주먹밥으로 때우기 일쑤다. 전역을 이틀 앞두고 훈련에 참가한 장정우(22) 병장은 “언제 적의 공격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간단히 고열량을 섭취하고 전투에 대비해야 한다”며 “대부분 전투식량과 주먹밥으로 끼니를 해결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장병들은 ‘전투상황에서 이게 어디냐’는 듯 주먹밥에 적응돼 있었다. 기자에게는 김치와 쇠고기, 당근을 넣어 만든 주먹밥에 컵라면 한 개가 제공됐다.
중대장의 출동 명령이 떨어지자 추위에 움츠러들었던 전차 승무원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눈빛이 맹수처럼 빛났다. 가상이긴 하지만 전투에 임하는 만큼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승무원들은 국방색 베레모 대신 헬멧을 쓰고 전투 위치에 자리 잡았다. K-1전차에는 전차장(포탑 오른쪽), 조종수(전차 전면부), 포수(포탑 내부), 탄약수(포탑 왼쪽) 등 네 명의 승무원이 오른다. 엔진음으로 의사소통이 어려워 승무원들은 헬멧에 장착된 송수신 장치를 이용한다. 승무원들은 이동간 전후좌우 상황을 수시로 교신한다. 포수를 제외한 3명의 승무원들은 차가운 날씨에도 좌석에서 일어나 상반신을 외부에 드러내고 이동했다. 4
50t 넘는 전차, 체감 시속 100㎞
오후 3시에 시작된 작전은 자정을 넘길 때까지 이어졌다. 탄약수는 교통 안전봉을 연신 흔들며 오가는 일반 차량들에게 주의 신호를 했다. 설구목(대위) 중대장은 “전차의 폭이 차선보다 넓어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일반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동작전도 주민들의 출퇴근 시간을 가급적 피해서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날도 오후 5시부터 8시30분까지 장호원 인근의 하천가에서 저녁 식사 겸 휴식을 취했다. 점심과 달리 저녁 식사는 밥에다 오징어무침과 오징어 젓갈, 깍두기 반찬이 나왔다. 달빛에 의지한 식사였다. 대항군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조명을 사용하지 않았다.
밤 11시 부교를 따라 남한강 건너다
어둠이 짙게 깔리자 이번 훈련의 최대 하이라이트인 남한강 도하 명령이 떨어졌다. 여주까지 20㎞ 가까이 이동한 후 도하하는 작전이다. 남한강을 사이로 건너편의 황군 점령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날 낮 설치된 부교(浮橋) 주변에는 인근 선박들에서 비추는 조명으로 대낮 같았다. 부교를 건넌 전차부대는 또 한 차례 1시간여의 대기시간을 가졌다. 전방 전투가 종료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밤 11시를 넘기며 기동훈련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차부대는 모든 조명을 끄고 달빛에 의지해 조심스레 목적지까지 기동했다. 이날 기동훈련은 예정보다 11시간 늦어진 밤 1시가 돼서야 끝났다.
PC방 같은 지휘통제본부
적군 움직임 디지털 지도에…작전회의는 위성 이용해 화상으로
김유근 8사단장이 호국훈련 화상작전 회의 시스템을 설명하고 있다.
사무실 한가운데 커다란 군사지도를 펼쳐놓고 지휘봉으로 작전을 지휘하던 모습은 사라졌다. 김유근(육군 소장·육사 36기) 8사단장은 “IT기술이 발달하면서 과거의 상황판은 사라졌다”며 “밤새도록 상황판을 제작하는 데 힘을 뺐던 참모들은 그 시간에 작전을 연구하고 실제 기동을 수행할 수 있게 돼 전투력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야전부대와 무전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그를 바탕으로 상황판을 만드는 시간에 전투를 준비하거나 휴식을 통해 전투력을 높일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또 지휘관이 작전회의를 소집할 경우 어디에 잠복해 있을지 모를 적의 공격을 각오하고 이동했어야 했지만 지금은 화상회의가 가능해져 적의 공격으로부터도 보호받을 수 있게 됐다. 김 사단장은 “현대 전쟁은 누가 먼저 적을 발견하고 강력한 타격을 가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며 “사단장이 전장의 상황을 직접 보며 전투를 지휘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날 통제본부에는 연대급까지 위성으로 연결된 시스템을 통해 화상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실전처럼 치러지는 모의훈련
호국훈련은 우리 군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군단급 야외 기동훈련이다. 두 개의 군단이 청군과 황군으로 나뉘어 2박3일씩 공격과 방어를 번갈아 가며 수행한다. 예정된 시나리오는 없다. 실전과 똑같이 정보수집과 관측에 따라 아군을 기동시켜 대항군에 대응할 뿐이다. 훈련에 참여한 부대의 모습은 야전 그대로다. 경우에 따라 수십㎞의 기동도 이뤄진다. 대항군을 만났을 때 실제와 같이 대형을 유지하고 전투에 임한다. 필요에 따라 육·해·공군의 합동작전도 펼쳐진다. 진지를 구축하기도 하고 전투에 나설 때는 전투식량으로 끼니를 때운다. 대항군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한 은폐는 기본이다. 야간 기동도 수시로 이뤄진다. 부대 이동도 전장 상황에 따라 예닐곱 시간씩 늦어지기 일쑤다. 전투가 빨리 종료되면 휴식 중에도 이동 명령이 떨어진다. 그러나 안전상 실제 탄약을 사용하지 않는다. 전투의 승패는 심판관들이 결정한다. 심판관들은 전투부대와 함께하며 전력이나 위치, 전략 등을 판정 본부에 알려주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승패가 갈린다. 승리했을 경우 전진하고 패전하면 후퇴해야 한다. 군 관계자는 “내년의 호국훈련 대상 부대가 올해 심판관을 맡는다”며 “심판을 보면서 새로운 전투 전술을 개발할 수 있는 등의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호국훈련은 군 최대 실기동 연습
2012년 전시작전통제권의 한국군 전환에 따라 우리 군의 독자적인 작전 임무수행 능력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군은 키 리졸브,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 등 한·미 합동 연습을 진행 중이다. 10여 개의 크고 작은 단독 훈련도 실시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합동참모본부 주도로 매년 열리는 호국훈련은 규모가 가장 크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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