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패스트15 [6] 화우테크놀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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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유영호 화우테크놀러지 사장이 올초에 지은 경기도 부천의 LED 조명 생산라인 앞에 섰다. 유 사장뒤로 전구형 LED조명인 ‘루미다스’가 품질 검사를 받고 있다. [김경빈 기자]

‘이노패스트 15’는 혁신(Innovative)을 통해 고성장(Fast-Growing)을 일궈내는 우량기업을 가리킵니다.‘한국 대표기업’이라고 하기엔 아직 부족하지만 미래의 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중견·중소 기업들 입니다. 중앙일보는 작지만 강한 15개 이노패스트 기업의 창업·성장 스토리를 통해 기업가 정신이 기업의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조명할 예정입니다. 세계적 컨설팅 업체인 딜로이트의 컨설팅도 함께 소개합니다. 또 매년 이들 기업의 성과를 다시 취재해 성공과 실패의 원인도 분석해 나가겠습니다.

대학에서 철학 전공. 졸업 후 3년간 보험회사 근무. 월급쟁이 생활을 접고 찾아든 곳이 청계천 기계 골목. 친척 공장에서 기계 고치는 것을 돕다가 창업. 유영호(50) 화우테크놀러지 사장이 기계 공장(화우기계)을 차린 것은 꼭 20년 전이다.

그러다 2000년 이후 공작기계 메이커에서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사업자로 화려한 변신이 시작된다.

LED, 말 그대로 스스로 빛을 내는 반도체다. 휴대전화 화면을 밝히는 데 주로 쓰인다. 최근엔 TV용 디스플레이 뒤에 들어가는 백라이트로도 쓰임새가 넓어졌다. 요즘 LED가 각광받는 건 소재의 친환경성 덕이다. 같은 전력으로 형광등이나 백열등보다 훨씬 밝은 빛을 내고 수명도 길다. 유럽에서는 수년 내에 전력 소모가 큰 백열등을 LED 조명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

“백열등은 전력의 5%만 빛으로 바꾸고 95%는 열로 소비합니다. 반면 LED 조명은 전기 에너지의 80%를 빛으로 바꾸니 에너지 효율에서 비교가 안 되죠. 에너지 절감이 각국 공통의 화두가 되면서 자연히 LED 조명에 대한 수요가 커진 거죠.”

사슴 떼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고 길목을 지키는 포수의 전략이라고나 할까. 화우테크놀러지는 2006년 평판형 LED 조명인 ‘루미시트’를, 2007년엔 전구형 ‘루미다스’를 내놓았다. 국내보다는 일본과 미국, 유럽 같은 선진국에서 장사가 됐다. 전기요금이 비싸고 에너지 절약과 이산화탄소 배출 억제 같은 사회적 요구가 큰 선진국들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지난해 LED 조명 매출액 608억원 중 83%가 수출이다.

‘블루오션’인 LED 조명과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기계공장을 운영하면서 부닥친 장벽을 넘기 위한 끊임없는 탐구와 혁신의 결과다. 그는 화우기계를 창업한 뒤 처음엔 외국산 공작기계를 들여와 본떠서 팔았다. 그러다 자체 설계로 CNC(수치제어) 전용장비를 개발하는 데까지 발전했다. 컴퓨터로 디자인한 문양을 정교하게 깎아내는 기술로 기계를 꽤 팔았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기계에선 선진국이 우리보다 200년은 앞서 있습디다. 도저히 못 따라가겠더군요. 웬만한 건 모두 특허로 걸려 있고, 브랜드도 경쟁이 안 됐어요. 한국 시장은 너무 작아 외국으로 나가야겠는데, 기계로는 이길 수가 없겠더라고요.”

적어도 출발선이 비슷해야 세계 무대에서 어느 정도 겨뤄볼 것 아닌가.

그래서 그는 남들이 안 하는 것을 찾았다. 그래야 앞서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다고 그간 노하우를 쌓은 기계 사업과 영 동떨어져서도 안 됐다. 우선은 CNC조각기계를 활용해 지하철역 대형 광고판 제작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광고판 디자인을 다양하게 만들기 위해 형광등을 대신할 광원을 찾던 중 LED를 알게 됐다. 2000년이었다.

LED 조명 시장의 규모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을 정도로 초기 단계였다.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분야였고, 그래서 열심히 하면 승산이 있다고 봤다.

“출발선에서 총성이 울렸는데, 우리가 먼저 출발한 셈이지요.”

이때부터 LED 기술 개발에 몰두했다. 다른 회사들이 20W급 제품을 들고 나왔을 때, 화우는 80W급의 제품화에 성공했다. LED는 밝기를 높이면 열이 많아진다. 이 열을 다스리는 게 기술의 핵심이다. 아크릴판에 홈을 파서 LED를 5분의 1 정도만 집어넣고, 나머지 5분의 4는 밖으로 드러나게 고정시킨 뒤 방열 코일을 둘러 열을 밖으로 빼내는 ‘방열 코일 기술’을 개발했다. 빛이 앞으로만 나가는 ‘직진성’을 보완하고 골고루 퍼지게 하기 위한 광유도 기술도 개발했다. 여기엔 CNC 공작기계의 정교한 커팅 기술을 응용했다.

이렇게 개발한 기술로 그는 세계 40개국에서 특허를 냈다. 남들이 관심을 두지 않을 때, 한 발 앞서 연구해 먼저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오스람이나 필립스 같은 대기업들은 ‘제 살 깎아먹기’를 우려해 LED 조명 사업에 소극적이었다. LED 조명은 회사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2004~2006년 140억원대에 머무르던 연간 매출액은 2008년엔 5배가 넘는 742억원으로 불었다. 또 2006년 7.2%였던 매출액 영업이익률도 지난해 19.3%로 뛰었다.

하지만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지난해 금융위기는 역풍이었다. 일본·미국·캐나다 등 해외 합작법인 추진이 뒷걸음질쳤다. 또 해외 투자자들이 투자를 미루거나 취소하는 바람에 요즘은 투자자 찾기에 다시 나섰다. 대량생산에 대비하기 위해 신축한 공장을 규모 있게 돌리는 것도 유 사장의 고민거리다.

“경기 침체의 돌파구로 녹색성장이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또 나라마다 이산화탄소 감축 계획이 가시화하고 있지요. 점점 좋은 여건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기술 발전으로 LED 가격이 떨어지면 산업용에 머무르던 수요가 가정용으로도 확산할 겁니다. 곧 대량 판매할 수 있을 때가 올 겁니다.”

유 사장은 ‘기업은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살아남기 위해 CNC공작기계에서 광고판으로, 그리도 다시 LED 조명으로 신속하게 방향을 틀었다. 그는 다시 진화할 채비를 하고 있다.

“LED 조명 시장도 머지않아 레드오션이 되겠죠. 국내 경쟁업체만 수십 곳인 데다 장기적으로 다국적 기업과의 싸움이 되면 승산이 없다고 봐요.”

그래서 또 아이디어를 짜냈다. LED조명과 이산화탄소 배출권 사업을 연계한 것이다. 대규모 사업장과 공공시설에 LED 조명을 설치하고, 그로 인한 온실가스 감축량만큼을 탄소배출권으로 거래해 수익을 얻는 사업 모델이다. 정부의 청정개발체제(CDM) 사업 승인도 받았다. 그의 경영 철학, ‘중원을 장악해 천하를 평정한다’는 것이다. 일단 중원을 장악했으니 이젠 다음 단계로 들어설 태세다.

특별취재팀=금융증권팀 김준현 차장, 김원배·김영훈·조민근·박현영·한애란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이런 점은 보완하세요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 불가피 … 빠른 의사 결정 위한 시스템 경영 필요

화우테크놀러지는 CNC장비개발에서 라이트 패널로, 그리고 다시 LED 조명사업으로 발 빠른 사업전환을 통해 지속적인 경쟁우위를 점해 왔다. 기술적 가치를 중시하는 창업자의 LED 조명에 대한 시의적절한 투자 결정은 회사를 녹색경제의 화두인 LED 조명의 기린아로 부각시켰다. 그러나 기업이 성장하면서 조직원이 늘고 경영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오면 최고경영자 개인의 판단으로는 한계에 부닥치게 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시스템에 의한 경영이다.

처음 경영 시스템을 구축할 때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있다. 부장 위에 본부장, 본부장 위에 전무, 또 그 위에 부사장을 만드는 식의 도식화가 그것이다. 심지어 규모에 걸맞지 않게 각종 위원회를 신설하는 경우도 있다. 대기업에선 잘 짜인 의사결정 시스템일 수 있지만 중소기업에 적합한 조직은 아니다.

이 회사가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해온 속도경영을 조직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옥상옥’ 조직을 만드는 게 아니다. 먼저 각 분야의 전문가를 키우는 것이 시급하다. 몇 조원을 굴리는 실리콘밸리의 대형 벤처캐피털 회사도 실제 직원은 몇 명뿐이다. 이들이 각자 자기 분야의 전문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다. 그리고 이들 전문가에게 권한을 이양해 빠르고 정확한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해야 한다. 전문가가 아니라 그 윗선의 관리자가 결정한다면 ‘속도’라는 회사의 장점은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이 회사의 근본적인 경쟁력은 녹색경제를 선도할 LED 조명기술에 있다. 각국 경제 운영 및 기업경영의 최대 화두 중 하나는 단연 녹색성장이다. 일례로 정부는 최근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2020년까지 2005년 대비 4% 줄이기로 했다. 다른 제조업은 이 같은 정책에 울상이지만 이 회사는 웃음을 짓고 있다. 전기요금 인상으로 LED 조명 수요가 늘 것이기 때문이다.

창업자인 유영호 사장은 대학시절 통일로에서 서울까지 펑크가 난 자전거를 끌고 가면서 느낀 소비자로서의 아픔을 이중튜브 타이어 개발로 승화시킨 바 있다. 이런 소비자 감흥 리더십을 조직의 행동양식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아울러 향후 주류를 이룰 녹색 소비자를 겨냥한 녹색경영체제를 갖춰야 한다.

이 회사의 또 하나의 경쟁력은 매달 등록되는 디자인 특허다. 여기엔 통상적인 디자인보다 LED 조명의 기술적인 측면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있다. 이미 국내에서만 300여 개 업체가 LED 조명 시장에 진출해 있다. 세계적으로도 내로라하는 거대 기업들과의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쟁우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기술 개발과 이를 보호할 수 있는 특허 확보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디자인을 그 자체로 특화시키는 거다. 디자인은 더 이상 겉모양을 꾸미는 데 한정된 작업이 아니다. 디자인은 기술을 적용하는 것, 그 이상의 무엇이다. 경영학의 구루인 톰 피터스는 솔루션과 경험, 꿈의 실현을 파는 사람이라면 디자인에 영혼이 머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디자인은 우리 삶을 바꾸고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 성패의 관건은 여기에 달려 있다. 새로운 개념의 디자인이 모든 조직에 적용되고 전파될 수 있도록 기업 문화를 바꿔나가는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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