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균 천안시 북면장이 마을 주민들과 함께 경로당과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전달할 김장을 하고 있다.
당시 면장은 시골 우리 집에 오는 제일 웃어른 중의 한 명이었고, 그나마 자주 볼 수는 있는 손님이 아니었다. 면서기나 산감(山監·산을 감독하는 사람)은 가끔 와서 막걸리 또는 잘 익은 동동주를 어른들하고 마시고 해질 녘에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면장님’을 집에 모시기란 쉽지 않았다.
그 시절 면장이 오는 날은 사랑방을 깨끗이 청소하고 앞마당과 바깥마당을 싸리비로 쓸었다. 누추한 집을 방문하는 데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차리기 위함이었다. 면장이 집을 나서기까지 집안의 여자들은 분주하게 부엌을 드나들었고 광문을 여닫았다. 그래도 혹시나 있을 바깥양반의 호통을 두려워하면 긴장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 추억을 갖고 있는 내가 산 좋고 물 맑은 천안 북면의 면장이 된지 1년 남짓 됐다. 요즘은 면장을 집으로 초청하는 경우는 드물다. 혹여 면장에게 술밥 대접이라도 할라치면 인근의 식당으로 부른다. 그윽한 시골의 사랑방의 맛은 나지는 않더라도 삼겹살에 소주 한 잔에서 나오는 넉넉하고 너그러운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별 다름이 없으니 즐겁고 행복하다.
어떤 마을 이장이 “내일 동네 어른신분들을 모시고 점심을 대접하기로 했으니 면장이 좀 와야겠다”고 한다. “예! 가야지요!”
서로 마주 앉으면 풋풋한 정담이 오간다. “우리 동네에서 누구는 시청 과장인 것은 아시지요.” “이 양반 둘째 아들은 파출소장이요.” “이 양반 사위가 검찰청에 있소.” “이 분 자제는 학교 선생이요.” “나는 6.25 전쟁 때 큰 공을 세운 사람이요.”
어디에서 이런 자랑스러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이 고장에서 출생해 자란 사람이 대처에서 출세를 해서 고위직에 있는 분들이 한두 분이 아니고 또한 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도 많다. 그 중 내가 아는 사람도 더러 있다. 그런 잘 된 사람이 우리 마을에 있어 동네 분들이 자랑스러워하니 그 분들이 고맙기까지 하다.
면장은 늘 행복하다. 벼 수매하는 날에는 농민을 모두 볼 수 있어 좋고, 윷놀이 행사에 가면 사물놀이에 막걸리를 권하며 환영하니 더욱 즐겁다. 마을 기원제에 가면, 면장이 먼저 절하게 하며 축원하게 한다. 고향 방문의 날, 동창회, 체육대회, 생일에도 면장을 ‘얼굴마담’으로 생각해 줘 부른다. 고마운 일이다. 더구나 불만스런 일이 있어 면 직원에게 소리를 지르다가도 면장을 보면 살며시 누그러뜨리는 소박한 주민들이 어디 또 있겠는가?
시골면장은 배도 조금 볼록해 없어 보이지 않아야 하고, 흥나는 자리에선 노래 한 가락할 줄 알고, 여러 사람과 한 잔 술을 나눌 줄 알아 흉허물이 없어야 한다. 또 사람 속이 좋아 아무나 잘 만나줘야 한다. 잘 생긴 면장보다는 막걸리를 좋아하는 동네 아저씨 같은 촌스러운 면장이면 더욱 좋다.
오늘은 새마을지도자들이 김장을 담근다고 오란다. 여러 마을의 경로당과 홀로 사시는 노인들에게 드린다고 함께 담그자는 것이니 어찌 마다하겠는가. 시골면장은 김장을 담글 줄 알아서 권위의 탈을 훌훌 벗을 수 있으니 날마다 즐겁고 행복하다.
오동균(천안 북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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