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男兒있소?‘천하잡놈’이 보고 싶소 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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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사마천 같은 남자는 왜 안 보이나

등단 40주년 페미니스트 시인 문정희 진짜 남자를 그리워하다

- 이후 페미니즘에 관한 체계적 이론을 습득하신 것으로 압니다.

“1980년 광주 이후 혼란한 한국에서 방황하다 어떤 계기로 1982년부터 2년간 뉴욕대로 유학가게 됐지요. 아이 둘을 데리고요. 뉴욕에서 진실로 자유라는 것을 알았어요. 정치·사회적 의미가 아닌 인간 본래의 숨결 같은 자유를요. 그리고 당시 구미사회를 풍미하던 페미니즘 저서들을 읽고 내가 소속된 사회를 이해하고 나름의 이론적 체계를 조금 세운 것입니다.

막연히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역사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제도화했는가에 대한 것을 체계화하게 하는 과정을 거치게 됐죠. 그러고 나서 1980년대 중반 귀국한 이후 다시 대학원에 들어가 문학공부를 계속하면서 문학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좀 더 다양한 내공을 쌓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래서 사회과학 서적들로 독서의 범위를 넓혀 나름으로 좀 읽었어요. 당시 금서들을 읽는 재미는 또 다른 기쁨이었지요. 1992년 세간의 화제가 됐던 <당당한 여자>라는 에세이집을 낸 것도 그런 맥락입니다.

다시 남자를 위하여

문정희

요새는 왜 사나이를 만나기가 힘들지
싱싱하게 몸부림치는
가물치처럼 온몸을 던져오는
거대한 파도를…
몰래 숨어 해치우는
누우렇고 나약한 잡것들뿐
눈에 띌까, 어슬렁거리는 초라한 잡종들뿐
눈부신 야생마는 만나기가 어렵지
여권운동가들이 저지른 일 중에
가장 큰 실수는
바로 세상에서
멋진 잡놈들을 추방해 버린 것은 아닐까
핑계 대기 쉬운 말로 산업사회 탓인가
그들의 빛나는 이빨을 뽑아내고
그들의 거친 머리칼을 솎아내고
그들의 발에 제지의 쇠고리를
채워버린 것은 누구일까
그건 너무 슬픈 일이야
여자들은 누구나 마음 속 깊이
야성의 사나이를 만나고 싶어하는 걸
갈증처럼 바람둥이에게 휘말려
한평생을 던져버리고 싶은 걸
안토니우스, 시저 그리고
안록산에게 무너진 현종을 봐
그뿐인가, 나폴레옹 너는 뭐며 심지어
돈주앙, 변학도, 그 끝없는 식욕을
여자들이 얼마나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어?
그런데 어찌된 일이야. 요새는
비겁하게 치마 속으로 손을 들이미는
때 묻고 약아빠진 졸개들은 많은데
불꽃을 찾아온 사막을 헤매이며
검은 눈썹을 태우는
진짜 멋지고 당당한 잡놈은
멸종 위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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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방대한 역사책 <사기>를 쓴 사마천, 온 나라를 짚신발로 떠돌면서 ‘대동여지도’를

- 페미니즘에 앞장섰던 시인이 남성을 배척이 아닌, 품어 안아야 할 연민의 시선으로 돌아보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부터였어요. 1991년에는 소련 해체로 공산권 붕괴가 이어지죠. 동시에 이데올로기가 해체되잖아요? 이데올로기는 좌우 사상의 해체뿐만 아니라 남자와 여자 성별의 해체를 포함해 사회·문화 전반에 해체주의가 만연하게 돼요. 그러다 보니 제가 노래한 것이 어떤 벽에 부닥치게 되더라고요.

남성을 너무 공격의 대상으로 바라봐서는 끝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우리 앞에 가로 놓여 있던 모든 벽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남성 중심의 사회, 가부장적 체계를 공격하고 남성을 하나의 억압의 대상으로 손가락질하는 것은 더구나 시인이 할 역할이 아니었어요. 나는 이 시대의 여성이면서 동시에 모성을 지닌 사람이며, 그래서 한 걸음 앞서는 대안을 시 속에서 제시하고 싶었어요.”

- 저 멀리 공격의 대상으로 밀쳐 놓았던 남성을 끌어안으신 거네요?

“그래서 남성을 품고 크게 동시대에 살고 있는 남성에게 이 시대의 여성 시인으로서 아름다운 시를 지어 노래해주고 남성성 속에 숨어 있는 장점을 일깨워 주자고 생각했지요. 이런 사랑과 화해의 노력이 바로 이 시대를 함께 사는 여성들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고 믿은 것이죠. 결국 이것은 포괄적으로 보면 인간에 대한 사랑과 화해입니다만….”

- 문 시인의 시 속에 나타난 남성은 남성의 장점을 끄집어내기보다 무언가 상실한 남성을 표현한 것이 많은데요. 사마천이나 전봉준을 노래한 시에서도 현대 남성들은 그들처럼 왜 멋있지 못하느냐고 꾸짖잖아요?

“지금 남성들의 실체를 정직하게 표현한 것뿐입니다. 사실 시는 교훈이나 구호 또는 계몽이 아니잖아요? 1990년대 큰 가치관의 혼란을 겪으면서 점점 사회에서는 물질의 가치가 커져갔습니다. 남성들이 정신의 거대함이라든가 장대한 꿈을 갖기보다 육체적(physical) 에너지, 동물적 에너지의 증대를 강조하는 쪽으로 발달한 거죠.

예를 들면 1990년대 해체주의와 더불어 러시아도 붕괴하고 중국도 붕괴하고 아울러 한국사회도 외형적으로 민주화하고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다니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당시 한국의 관광객이 태국의 관광지에 가서 곰발바닥과 뱀을 삶아먹다 망신당했다는 기사가 등장합니다.

동시대를 사는 여성으로서 부끄럽고 슬프고 비극적인 일이었죠. 그때 마침 저는 중국여행을 준비 중이었는데 그래서 그냥 가기보다 중국을 좀 공부하고 가보자고 해서 사마천이 쓴 <사기>를 읽고 있었는데, 그 책이 제게 주는 메시지는 참 강렬했어요. 진짜 남성의 원초적 에너지를 본 거죠.”

문 시인이 본 사마천은 투옥당한 패장을 양심과 정의에 따라 변호했다 남근을 잘리는 치욕적 궁형(宮刑)을 받고도 방대한 역사책 <사기>를 써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규명해낸 ‘진짜 사나이’였다. 그의 시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 전문을 보자.

‘세상의 사나이들은 기둥 하나를
세우기 위해 산다
좀 더 튼튼하고
좀 더 당당하게
시대와 밤을 찌를 수 있는 기둥
그래서 그들은 개고기를 뜯어먹고
해구신을 고아먹고
산삼을 찾아
날마다 허둥거리며
붉은 눈을 번득인다
그런데 꼿꼿한 기둥을 자르고
천 년을 얻은 사내가 있다
기둥에서 해방되어 비로소
사내가 된 사내가 있다
기둥으로 끌 수 없는
제 눈 속의 불
천 년의 역사에다 당겨 놓은 방화범이 있다
썰물처럼 공허한 말들이
모두 빠져나간 후에도
오직 살아있는 그의 목소리
모래처럼 시간의 비늘이 쓸려 간 자리에
큼지막하게 찍어놓은 그의 발자국을 본다
천 년 후의 여자 하나
오래 잠 못 들게 하는
멋진 사나이가 여기 있다’

온 나라를 짚신발로 떠돌면서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 목숨을 걸고 자신의 이상을 향해 농민혁명을 일으킨 전봉준 등 문 시인의 시 속에는 신화와 역사 속 담대한 이상을 강건하게 가졌던 ‘진짜 사나이’들이 등장한다.

“현대사회를 통과하는 한 여성 시인으로서 우리 한국 남성성 속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끌어내 노래 불러줌으로써 시대를 행복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끝없이 투쟁하고 공격하고 역할에 대한 반격을 가하는 것은 진정한 페미니즘이 아닙니다. 남성은 여성이 배척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끌어안고 화해해주고 사랑해줄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남자를 위하여>라는 시집에서 제가 보여주고자 했던 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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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걸고 자신의 이상을 향해 농민혁명을 일으킨 전봉준.

- <남자를 위하여>라는 시 중에 ‘남자들은 딸을 낳아 아버지가 될 때 비로소 자신 속에서 으르렁거리던 짐승과 결별한다’는 시구가 있잖아요. ‘딸의 아랫도리를 바라보며 신이 나오는 길을 알게 된다’는 구절이 인상적이던데요.

“진정한 남성성이라는 것은 자식을 낳았을 때 비로소 인간 자체의 생명성을 되찾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딸의 탄생을 지켜보며 진정한 생명의 근원을 찾게 된다는 거죠.”

‘키 큰 남자를 보면
가만히 팔 걸고 싶다
어린 날 오빠 팔에 매달리듯
그렇게 매달리고 싶다 (중략)
그의 눈썹에
한 개의 잎으로 매달려
푸른 하늘을 조금씩 갉아먹고 싶다
누에처럼 긴 잠 들고 싶다
키 큰 남자를 보면’(<키 큰 남자> 중에서)
- <키 큰 남자>라는 시에서 ‘키가 크다’는 것은 무엇을 상징하나요?
“키 큰 남자로 표상되는 어떤 가치를 상징한 것입니다. 키라는 것이 물리적으로 키가 큰 남자를 뜻하는 것은 아니에요. 키는 작아도 원대한 이상을 가진 남자라면 키 큰 남자라는 의미죠.”
‘이제부터 세상의 남자들을
모두 오빠라 부르기로 했다
집안에서 용돈을 제일 많이 쓰고
유산도 고스란히 제 몫으로 차지한
우리 집의 아들들만 오빠가 아니다
오빠!
이 자지러질 듯 상큼하고 든든한 이름을
이제 모든 남자들을 향해
다정히 불러주기로 했다 (중략)
모처럼 물안개 걷혀
길도 하늘도 보이기 시작한
불혹의 기념으로
세상 남자들은
이제 모두 나의 오빠가 되었다 (중략)
오빠! 이렇게 불러주고 나면
세상엔 모든 짐승이 사라지고
헐떡임이 사라지고
오히려 두둑한 지갑을 송두리째 들고 와
비단구두 사주고 싶어 가슴 설레는
오빠들이 사방에 있음을
나 이제 용케도 알아버렸다’(<오빠> 중에서)

꾸짖는 남자, 측은지심으로 바라본 남자는 <오빠>라는 시에서 비로소 사랑과 화해의 메시지로 바뀐다.

“오빠라는 말이 참 많이 쓰이죠. 유명 스타한테도 오빠라고 하고. 심지어 결혼한 남편에게도 오빠라는 호칭을 쓰잖아요? 제 시 속에 나타나는 ‘오빠’는 화해의 호칭입니다. 오빠를 꼭 안아주는 누이라는 존재는 여성과, 모성과, 여신 이런 것들이 다 포함된 아름다운 존재죠. 이 세상의 모든 여성이 누이가 되고, 모든 남성이 오빠가 돼 화해와 용서의 세상을 만드는 것을 상징한 겁니다.”

글 박미숙 월간중앙 기자 [splanet88@joongang.co.kr] 사진 김현동 월간중앙 사진기자 [lucid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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