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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디지털시대 기업 인사혁명 '5대 키워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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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서울 지하철 2호선 삼성·강남역과 시청앞·을지로 주변역에서 타고 내리는 사람은 외모에서부터 처이가 난다.짙은 색깔의 양복에 넥타이를 단정하게 맨 사람들로 붐비는 시청앞·을지로 지역에 비해 벤처타운 부근 삼성·강남역에는 캐주얼 차림의 젊은이가 많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도 다르다.을지로 주변에서는 ‘바이어’‘매출’등의 단어가 많은데 비해 삼성역 주변에서는 ‘웹사이트’‘스톡옵션’등이 흔히 들리는 단어다.벤처 열풍의 진원지인 서울 테헤란 밸리와 기존 기업들이 모여 있는 서울 중심가와의 차이를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기업들의 인사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3일 '디지털 시대의 인사혁명' 이란 보고서에서 벤처열풍과 디지털 혁명으로 기업인사에도 빅뱅이 시작됐다고 진단했다.

연구소는▶조직의 네트워크화▶핵심인재 중심의 인력관리▶스톡옵션 중심의 종업원 보상▶개별적 노사관계▶벤처형 문화의 확산을 향후 기업 인사문화의 5대 키워드로 꼽았다.

연구소는 과거 폐쇄.피라미드형의 구조였던 기업조직이 요즘 국제통화기금(IMF)구조조정과 벤처 열풍으로 조직의 고위.중간.젊은층이 모두 빠져나가는 상황을 맞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같은 조직형태는 앞으로 네트워크화에 따라 중간관리층이 줄어들고 앞날을 내다보는 능력을 가진 경영진의 역할과 현장인력이 중요해지는 오뚝이형으로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정일 수석연구원은 "불확실성.광속성.다원성.가상성 등 디지털 시대의 변화하는 경영환경에 적응하려면 기업들도 인사부문의 근본적인 틀을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①조직의 네트워크화〓한글과컴퓨터는 신입 직원이 들어오면 e-메일 ID와 노트북PC만 지급한다.

원하는 직원에게는 소속 부서를 정해주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부서도 없다. 이들 직원은 이를 갖고 사내 네트워크로 들어와 과거 업무가 처리된 과정을 뒤져보며 사내교육도 받고 업무도 찾게 된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은 직원은 사내 네트워크에 일의 아이디어와 추진계획을 띄우면 전 직원들이 이를 놓고 토론을 벌인다. 그 뒤 특별한 반대가 없으면 이 직원은 그 일을 시작한다.

이 회사처럼 대기업들도 과거 업무별로 나눴던 실.부.과 등의 조직이 점차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돼 조직의 네트워크화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프로젝트에 따라 구매.생산.홍보 등이 합쳐져 한 조직을 이뤘다가 프로젝트가 끝나면 없어지는 형태도 생긴다.

직급도 빠르게 없어질 전망이다. 한국오라클의 경우 대리.과장.부장 등 직급 호칭을 없애고 사장.본부장.실장.팀장 등 네가지만 쓰고 있다.

이와 함께 정보전달이 광속(光速)으로 이뤄지면서 의사결정도 실시간으로 진행된다. 제너럴모터스(GM)새턴연구소의 경우 연구원에게 정보관리시스템을 통해 생산공정이 공개돼 공정에 이상이 생기면 연구원들도 즉시 처리방향을 공장에 전달한다.

②핵심인재 확보.유지가 기업가치 좌우〓디지털 시대에는 천재적인 엔지니어나 창의적인 비즈니스 리더 등 5%의 우수인재가 95%의 종업원을 선도한다.

이미 실리콘밸리 등에서는 기업 핵심인재의 이동에 따라 주가가 급등락하는 일이 흔하고 국내 벤처기업에서도 이같은 조짐이 보인다고 연구소측은 밝혔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이들 핵심인재를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게 된다. 수시로 우수 인재를 모니터링해 헤드헌터 등을 통해 스카우트에 나서게 된다. 고등학교 이전부터 인재를 발굴.관리하는 '추적형 채용' 같은 방식도 도입된다.

네티앙의 경우 기업 고문을 하고 있는 사람이 현재 학생이다. 이처럼 우수 인재라면 국적.인종.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터넷 게임을 잘 한다든지 하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특이 인재' 의 몸값도 높아진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최근 '약물 복용을 하는 경우라도 회사에 기여할 수 있다면 채용하겠다' 고 공식 발표한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③스톡옵션 중심 보상〓종업원에 대한 보상과 평가기준은 직급.근무연수 등에 기초하지 않고 노동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에 따라 급여를 받게 된다. 또 실적에 기초한 연봉 산정과 승진제도 운영이 일반화된다.

이를 위해 경영성과에 따른 이익배분제도가 빠르게 확산되고 스톡옵션이 주요 보상수단으로 인식된다.

포천지가 선정한 지난해 5백대 기업 중 90% 정도가 스톡옵션을 시행 중이다. 국내에서도 삼보컴퓨터.유한양행 등 2백61개사가 지난해 3월말 현재 스톡옵션 관련 정관을 만들었다.

④개별적 노사관계〓노조가 존재하지만 회사와 근로자 개인간 계약이 더욱 중요해진다.

노조는 임금.단체협약 등을 통해 전체적인 윤곽만 그릴 뿐 개인별 연봉협상이 보편화되고 노사관계가 개별화되는 경향이 가속화된다. 고용조건도 단체협약보다는 개별적 고용계약에 의해 결정된다.

⑤벤처형 기업문화의 확산〓대기업도 권한이양과 분사화, 발탁인사, 파격적인 보상 등의 벤처기업의 인사방식을 도입하게 된다. 계층구조를 최소화하고 사내 벤처나 분사 등을 제도화하는 일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용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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