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점 갈래, 경제공부 하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3면

3일 오전 서울 구로3동 이마트엔 앞치마를 두른 어린이 50여명이 줄지어 들어와 쇼핑을 했다. 인근 미술학원 유치부 학생들이 쇼핑 현장학습으로 할인점에 온 것이다. '지우개 4개, 딱풀 3개, 뽀뽀뽀 치약 1개'. 조은아(6) 어린이는 삐뚤삐뚤한 글씨체로 적은 쇼핑목록을 장바구니에 붙이고, 이들을 안내하러 나온 매장 직원의 안내에 잘 따랐다. 은아 양과 친구들은 지난 한 달 동안 심부름을 해서 받은 용돈을 모아 쇼핑 자금 3000원을 마련했다고 했다.

어린이들은 이 돈으로 자기 학용품을 고르기도 했고, 어버이 날을 맞아 아빠에게 선물하겠다며 양말을 고르기도 했다. 어린이들은 산 물건을 계산대로 가지고 가서 차례로 값을 치른 뒤 영수증과 거스름돈을 받아갔다. 이 중 몇 명은 골라온 물건이 3000원어치가 넘어 일부 물건을 되돌려주어야 했다.

인솔교사 조선경(28)씨는 "부모와 함께 물건을 살 때는 필요한 물건을 다 사달라고 떼를 쓰지만 자기가 직접 셈을 치르고 물건을 살 경우 돈을 아끼려고 애쓴다"면서 "자연스럽게 소비자 교육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요즘 할인점에 가면 이렇게 유치원생들이 매장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할인점이 어린이를 위한 경제 체험 학습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물건을 둘러보는 게 아니라 직접 쇼핑을 하고, 계산하면서 소비행위를 배운다.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홍용희 교수는 "단순히 아껴 쓰기보다는 합리적으로 상품을 사도록 소비자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할인점이 매장을 어린이 현장학습장으로 개방한 것은 1990년대 말부터다. 이마트 산본점 김창훈 인사팀장은 "처음엔 지역 유치원을 돌며 유치 홍보를 해야 했는데 지금은 스케줄을 조정해야 할 정도로 신청이 몰린다"며 "특히 2~3년 전 신용불량자 문제가 불거진 뒤에는 할인점 학습이 유치원의 필수 코스가 됐다"고 말했다.

2000년부터 매장을 유치원생 현장 학습장으로 개방한 GS마트의 경우 올해 점포마다 전담 직원을 두는 등 체계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일부 점포에서 어린이에게 불우이웃 돕기의 중요성을 깨우치게 하고 직접 실천하게 하는 '나눔가치 교육'을 했다. 구연동화로 왜 어려운 이웃을 도와야하는지를 알려주고, 어린이들이 직접 구운 쿠키와 케이크를 봉사단체에 기증했다. 홈플러스 측은 8월부터 서울.경기권에 있는 전 점포로 이 프로그램을 확대할 예정이다. 한 할인점 업계 관계자는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아이들에게 올바른 소비습관을 길러주는 효과를 거둘 수 있어 할인점의 사회봉사로 적절한 활동"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할인점 관계자는 "요즘 가정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크기 때문에 자기가 친숙한 할인점으로 부모를 데려간다"며 "마케팅차원에서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할인점 현장학습은 1시간 동안 진행된다. 짧은 시간이지만 경제교육 효과가 크다고 유치원 교사들은 말한다.

이화미술학원 김찬영(49) 원장은 "요즘 애들은 조르기만 하면 부모들이 다 사주기 때문에 경제관념이 부족하다"며 "할인점 학습을 하고난 뒤 '아이들이 달라졌다'며 기뻐하는 학부모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