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 무역수지 적자 전문가 좌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무역수지가 비상이다. 외환위기 이후 줄곧 지속돼온 무역흑자행진이 지난 1월 4억달러 적자로 막을내린데 이어 2월에도 흑자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수출이 20% 넘는 신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수입이 40% 넘는 급격한 증가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앞날 전망도 밝지 않다. 경기회복에 따라 수입수요가 늘어나고 있고, 원유가는 지난해에 비해 두배이상 오른 상태다.

또 원화가 절상(환율하락) 압력을 받고 있는 가운데 경쟁국 일본의 엔화는 절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향후 무역수지를 전망하고, 무역흑자 기조를 유지하기 위한 업계와 정부의 대응책을 알아보기 위해 긴급좌담회를 열었다.

<참석자>

◇ 정재관(鄭在琯) 현대종합상사 사장

◇ 이영선(李榮善)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오영교(吳盈敎) 산업자원부 차관

◇ 사회 : 김정수(金廷洙) 중앙일보 경제

-김정수 위원:이달에도 무역수지가 적자를 낼 가능성이 높다.경제위기를 지난 두해동안의 엄청난 무역흑자로 이겨냈다는 점에서 큰 사건이다.최근의 무역적자는 수출이 안돼서인가,수입이 너무 빨리 늘어나서인가.

-오영교 차관:최근 무역수지 적자는 수출이 늘어나는 것보다 고유가 등으로 수입이 더 늘어나는 등 일시적인 요인이 크다.이달 들어 19일 현재 13억6천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해 1년전 같은 기간의 1억달러 흑자와 비교되지만 수출이 꾸준히 늘고있어 월말까지는 1억달러 이내의 흑자가 예상되고 있다.

-정재관 사장:연초부터 무역수지가 적자를 기록한 것은 오히려 국민들에게 수출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데 좋은 계기가 되기도 했다.상당수의 업체들이 올해 수출목표를 지난해보다 2∼3% 늘려 잡았는데,최근 수출증가 추세로 보아 당초 예상을 초과할 전망이다.수입에 대한 위기의식만 불어넣는다면 올해 무역은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

-이영선 교수:올해 수출이 낙관적이냐는 것 자체보다는 지금 추세가 계속 유지될 것이냐가 더 큰 관심사다.올 무역수지를 결정지을 가장 큰 요인은 환율이다.엔화절하가 이뤄지고 있는 실정을 무시하고 수출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만 보는 것은 걱정된다.엔화 약세기조의 반전에 시간이 걸릴 것이므로,일본제품에 대한 우리 제품의 경쟁력이 쉽게 회복되기는 힘들 것이다.

앞으로 경기부양과 주식시장 호황에 따른 외화 유입이 늘어나 원화절상 압박이 상당할 것으로 보여 더욱 불투명하다.

-김:이달부터 무역수지가 흑자로 전환하겠가.

-오:2월 이후에는 흑자로 반전돼 한해 전체로는 무역수지 목표 1백20억달러 달성이 가능할 전망이다.최근 수출 증가세가 품목별·지역별로 고르게 이뤄지고 있지만 수입 급증에는 지난해 줄어들었던 재고 보충,시설투자 회복 그리고 원유수입액 증가 등 일시적 요인이 많기 때문이다.

고유가의 지속여부와 환율 추이,또 수입규제 등 해외시장의 변수 등이 무역수지의 향배를 좌우할 요인이다.

3월이후 안정적 흑자기조로 돌아서는데 만족하지말고 내년 이후의 흑자를 위한 구조조정에 주력해야할 시점이다.

-정:업계 입장에서도,엔화절하와 원화절상으로 자동차·반도체 등 주력부문에서 일본과의 경쟁이 쉽지않다.

원화 환율이 1천2백원선은 돼야 채산성이 맞다는 것이 업계의 생각이다.1천1백원선이하로 내려가면 수출에 상당한 차질이 예상된다.적정환율을 유지하기 위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한다.

환율 때문에 의욕을 상실하기 전에 수출업계를 격려해주고 관심을 쏟아주는 것이 중요하다.수출을 주도하는 제조업체들이 최근의 벤처열풍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도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기간산업의 바탕없이 벤처기업을 생각할 수 있는가.제조업을 도외시하지 말고 사기를 잃지않도록 격려해주는 것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하다.

-이:문제는 환율이다.그 핵심은 자본수지의 불균형이 실물경제에 급격한 충격을 주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정부는 시장이나 기업에 개입하기보다는 거시적인 정책의 틀속에서 수출정책을 해나가야할 것이다.

-오:환율 운영시스템의 개선등 구조개혁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많다.지난해 10월이후 원화는 2% 절상됐지만 엔화는 6∼7%가 절하돼 한·일상품간 경쟁력 유지가 한계에 도달한 상태다.

환율이 10원 절하되면 무역업체에 무려 1조6천억원의 손실과 이윤감소를 가져온다.환율의 적정수준을 유지하고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한편 업계가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데 주력할 방침이다.

이와관련,중소기업이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을 회피할 수 있도록 헷지기능을 강화하는 대책과 펀드 등을 조성해 외환수급을 조정하는 방안을 관계당국과 검토중이다.

-김:우리 수출상품의 비가격 경쟁력도 살펴보자.환율이외의 변수를 든다면.

-이:경기회복에 따라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면서 임금문제가 상당히 부각될 것으로 본다.

-정:선거를 앞두고 심리적으로 임금상승 기대가 높아짐에 따라 상당히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오:임금인상을 뛰어넘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 2단계 구조개혁을 통한 내적혁신과 체질 개선이 하루빨리 이뤄져야한다.

-김:어떤 분야에 경영혁신이 필요한가.국내 산업의 기술구조 고도화와 정보화는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가.또 글로벌화에 맞춰 정보와 기술,마케팅의 네트워크화는 잘 추진되고 있는가

-정:최근에 전략적 제휴를 통한 전자상거래망 구축에 상당한 변화가 일고 있다.

종합상사들은 디지털화 추세에 따라 위기의식이 높아지면서 국내업체 뿐 아니라 인근 동남아의 제조업체까지 결속해 비용절감과 새로운 사업기회 창출을 겨냥한 공동전선 구축에 부심하고있다.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되면 중간상의 역할이 없어지는 만큼 종합상사의 조직력과 경험을 살려 새롭게 변신할 기회를 찾고있다.

조만간 현대,삼성등 4대그룹 종합상사들이 공동출자하고 관련 국내외 업체가 참여하는 대규모 전략적 제휴가 이뤄질 예정이다.

-이:최근 변화가운데 정보화와 국제화는 으뜸이라 할 수있다.정부는 무엇보다 이에 대한 인프라 구축에 주도적으로 나서야한다.거래비용을 낮추고 정보를 쉽게 교환할 수있게 해주는 한편 각종 규제를 대폭적으로 완화해야 한다.예를 들어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등 거래비용을 낮춰줄 수있는 분야부터 정부가 역할을 해야한다.

-김:주요 수출시장 여건으로 봐서,지금과 같은 수준의 수출신장세 유지가 가능하다고 보는가.

-오:미국경제는 둔화추세가 예상되긴하지만 전체적인 수입수요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있다.

수출을 늘리려면 신시장 개척과 신상품 개발은 필수적이다.신규시장 창출없이 수출 증대는 있을 수없는 만큼 개발도상국가나 오일달러 덕에 수입수요가 크게 늘어난 국가들을 상대로 플랜트 등 수출확대전략이 필요하다.현재 20억∼30억달러 수준에 머물고있는 플랜트 수출을 1백억달러 이상으로 늘려나가야한다.

수출시장은 한번 잃게되면 2년 이내에 다시 회복하기가 어려운 특징이 있다.기존 수출시장과 규모를 유지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따라서 단기적인 가격경쟁력에 매달릴 수밖에 없고,환율에 연연하지 않는 수출정책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다.

-이:적정환율을 유지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환란 전에 8백원선의 환율을 고수한 것이 경제위기를 불러온 한 원인이 됐다는 지적도 있다.

-김:최근 수입의 급신장을 경기회복과 유가상승에 따른 단기적 현상으로만 봐야하는가.최근의 무역적자현상을 ‘자본재 산업에서 경쟁력이 없는 한국의 산업구조상 필연적인 현상’으로 보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앞으로 무역적자기조가 굳어버릴 위험도 크다는 지적인데.

-이:경제성장율이 높으면 수입이 늘어나고 따라서 무역수지 적자상태가 될 수 있다.그러나 최근에는 자본시장 개방으로 금융위기가 수시로 찾아 올 수 있는 만큼 적자를 줄이려는 노력이 지속돼야 한다.

우리의 산업구조는 수출이 늘어날수록 수입이 따라 늘어나는 특성이 있는만큼 수출보다는 수입에 정책적 초점을 맞춰야 한다.이와 관련,가급적 경기부양을 자제해야 한다.하루빨리 긴축으로 돌아서지 않으면 경상수지적자는 피할 수없다.특히 총선을맞아 정부지출이 확대되는 것을 최대한 경계해야 한다.

-정:수출용 원자재나 부품의 수입증가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그러나 국내업체들은 외국산 부품과 소재를 수입하면서 꾸준히 국산화와 기술개발에 나서고 있다.

-오:긴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수출과 수입을 동시에 늘려나가는 확대균형이 필요하다.내년이후 수출을 늘리려면 수입수요의 유발을 감내해야 한다.긴축으로 돌아서면,그 주름살이 대외부문으로 이어져 수출에 좋지않았던 경험이 많았다.

80년대 후반에 1백90억달러대의 무역흑자를 이뤘지만 물가안정에 집착한 흑자관리대책으로 수출지원이 중단돼,수출이 타격을 받고 무역수지가 다시 적자로 돌아섰다.시장잠재성이 있다면 단기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과감하게 수출함으로써 시장수요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에너지 다소비 구조를 개선하기위해 에너지산업과 에너지가격구조에 근본적인 개편이 필요하다.부품·소재산업도 국산대체차원이 아니라 세계경제에서 아웃소싱이 이뤄지는 채널로 수출산업화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김:최근의 벤처·정보화 정책이 수입유발적인 요소가 있다는 지적도 많은데.

-오:정부의 산업정책은 제조업과 정보·벤처업체들이 쌍두마차체제를 이루는데 초점을 맞추고있다.정부의 벤처정책은 제조업을 전환하거나 대체하는 개념이 아니라 몇년뒤에 차세대 수출주력산업이 되도록 육성하는데 있다.

올 수출목표도 1천6백억달러 중 1천4백억달러 이상을 전통적인 산업이 차지하는 등 여전히 전통 산업이 수출을 주도하고 있다.

-정:그동안 사회적인 관심사가 벤처산업에만 치중된 감이 있다. 앞으로는 기간 제조업과의 조화와 상호보완 속에서 벤처기업을 육성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김:무역수지 달성을 위해 정부와 업계에 한마디 한다면.

-이:무역수지 목표달성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기를 바란다.그것보다 흑자기조를 유지하는 거시적 차원에서의 정책추진이 더 중요하다.

-오:종합상사의 위상과 역할이 재정립되고 강조돼야 할 것이다.

환란 속에서도 수출의 절반 가까이를 맡아 위기극복의 견인차 역할을 해 낸 종합상사 등의 역할은 e비즈니스 추세속에도 여전히 남아있다.재벌의 무역창구라는 시각을 버리고 빠른 시장적응력을 유지하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정:수출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과거 몇십년 동안의 어려움을 이겨낸 경험을 살려 수출확대에 주력해야한다.

80년대에 흑자에서 적자로 반전된 뼈아픈 경험을 다시는 반복해서는 안되겠다는 각오와 흑자를 일궈낸다는 의지가 그 어느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정리=홍병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