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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병원예술재단 존 훼이트 이사장 방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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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0여년 전 그림을 그리고 싶다며 붓을 달라던 어린 환자가 제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전 세계 병원을 돌며 그림을 그려 환자를 위로하는 단체인 미국 병원예술재단의 존 훼이트(54)이사장은 이 일을 하게 된 계기를 이렇게 밝혔다. 7일 방한한 그는 1984년 재단 설립 이래 지금까지 165개국 700여개 병원에서 2만점 이상의 그림을 그렸다고 말했다. 병실에 그리기도 하고, 화폭에 그려 병실 벽에 걸기도 하는 이 작업엔 15만여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했다.

이번에 한국에서는 ▶고려대 안암병원 ▶충남대병원 ▶경북대병원 등에서 6일 동안 그림을 그릴 예정이다. 화이자코리아 직원들과 의사.대학생 등 다양한 사람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함께 그림을 그리게 된다.

이 재단에서 그림을 그리는 방식은 독특하다. 훼이트 이사장이 밑그림을 그리고 색깔을 나타내는 색깔점을 찍어 놓으면 자원봉사자들과 환자들이 함께 색칠하는 것이다. 그림은 꽃.나비.물고기 등 자연을 소재로 한다. 그는 "특히 물고기 그림의 경우 환자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학술조사에서도 밝혀졌다"고 말했다.

"병원들이 왜 예쁜 그림을 환자들이 있는 병동이 아닌 로비에 거는 지 이해할 수 없어요. 밖에 나갈 수도 없고, 뛰어 놀 수도 없는 어린이 환자.장기 입원환자들을 위해서라도 그림은 바깥에 있으면 안 되죠."

훼이트 이사장이 한국 병원을 돌아보고 한 말이다.

원래 광고 전문가였던 그는 시골에서 어려운 이웃들에게 의술을 베풀었던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취미삼아 병원에서 그림을 그리다 이 일과 인연을 맺게 됐다. 8년 동안 일과후와 주말에 자원봉사를 하다 재단 설립 후엔 전업으로 나섰다. 그는 "재단 규모가 이렇게 커질 줄은 나도 몰랐다"며 "일단 붓을 한번 잡아 본 사람들이 계속 행사에 다시 참여하고 아는 사람들까지 데리고 왔다"고 말했다.

그는 "소아암으로 며칠간 음식을 못 먹고 투정만 부리다 그림을 완성한 후 환하게 웃으며 밥을 달라고 하는 어린이 환자들도 있었고, 이들은 내게 힘을 준다"고 말했다. 그는 그림을 타일로 제작해 천장에 붙이는 작업도 한다. "호스를 입에 꽂아 움직일수도 없는 남편을 빈 천장만 보고 죽어가게 놔 둘 순 없다"던 한 부인의 부탁으로 시작된 일이다. 이번 훼이트 이사장의 방한에는 재미동포 김한씨 부부 등 8명의 자원봉사자가 동행했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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