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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재미있다, 예산 이야기] 청와대 살림으로 본 ‘그때 그 시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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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12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김백준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한 답변이다. 정부가 편성한 2010년 대통령실 예산은 경호처 예산을 포함해 1536억원. 총예산(291조8000억원)의 0.05%다. 대통령실 예산에는 시대가 담겨 있다. 역대 대통령의 철학과 행보가 녹아 있다. 국회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1974~2010년도 대통령실 예산안을 들여다봤다. 74년 9억2528만원(경호실 포함)이던 청와대 예산은 36년 만에 약 166배 늘었다.


◆박정희 정부=빛바랜 재생지 위에 손으로 직접 표를 그리고 숫자를 적어 넣은 예산안엔 권위주의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 있다. 74년 경호실을 제외한 대통령실 예산은 5억733만원. 이 중 박정희 전 대통령의 1년 급여는 381만원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다른 돈이 꽤 됐다. 판공비가 연 800만원이고, 지금의 ‘특수활동비’나 ‘업무추진비’에 해당하는 정보비 총액 3624만원 중 3000만원도 대통령 몫이었다. 급여를 포함하면 대통령실 전체 예산의 8.2% 정도가 대통령 재량이었다. 74년 청와대는 연 4회에 걸친 ‘존영(尊影·대통령의 사진)’ 촬영·인화 등에 696만원을 썼다. 주요 공공기관마다 걸어 놓던 대통령 사진을 계절에 따라 바꾸는 데 쓴 셈이다. 예산 내역은 ‘전동타자기 2대X25만원’ ‘나프킹(냅킨의 일본식 표현) 200매X100원’ 등으로 상세히 적었다. ‘동물사료비’ 항목에선 ‘공작새 5마리, 말 3필’ 등 경내에서 키우는 동물의 수까지 알 수 있다.

◆전두환·노태우 정부=전두환 정부 때 국회에 제출하는 대통령실 예산안의 항목은 극단적으로 단순화됐다. 83년도 예산안 설명서엔 ‘인건비’ ‘사업비’ 등의 추상적인 항목에 총액만 적었다. 대통령의 급여도 알 수 없다. 노태우 정부에선 조금 개선돼 직급별 급여 등이 공개됐다. 하지만 건물 유지관리비와 전기·수도요금 등을 영수증이 필요 없는 ‘정보비’에 포함시켜 총액만 적어 냈다.

◆김영삼 정부=구입한 청소용품의 종류와 개수까지 적었다. ‘트리오 1000원X120병X12개월=144만원’ 식이다. 지나치게 포괄적이었던 ‘정보비’에 포함됐던 상당 부분을 공개한 뒤 남는 것만 ‘특수활동비’로 묶었다. 홍인길 당시 총무수석은 17일 “정치자금을 받지 않겠다고 천명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한 첫 조치가 청와대 예산 투명화였다”고 말했다. 예산 항목에 ‘여론조사비’(95년 4억8600만원)와 소프트웨어 구입비(895만원)가 들어간 것도 전에 없던 변화다.

◆김대중 정부=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극복의 흔적이 묻어났다. 2000년엔 청와대에도 명예퇴직이 도입됐다. 3급 3명과 기능직 3명을 명예퇴직시키는 데 1억5000만원이 들었다. 같은 해 기업의 연봉제 도입 붐을 타고 대통령 급여가 연봉제로 전환됐다. 2001년엔 대통령 억대 연봉 시대가 열렸다.

◆노무현 정부=탄핵 소용돌이 속에 진행된 ‘여민관’ 신축 때문에 청와대 예산이 정치 쟁점이 됐다. 2004년도 예산안에 39억7403만원을 반영하자 한나라당은 “이삿짐을 싸야 할 마당에 새 건물을 짓느냐”고 비판했다. 온라인 보고 및 결재 시스템인 ‘e지원’ 도입 예산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신경 썼던 항목이다.

◆이명박 정부=지난해 예산을 2007년에 비해 무려 21.7% 깎았다. ‘작은 청와대’를 표방한 데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2010년도에는 올해보다 9.6% 늘렸다. 대통령의 행보와 직결되는 업무지원비가 58억원 늘었다. 직무수행경비가 전년보다 709.2% 늘어난 데다 특수활동비(22.6%)와 업무추진비(35.1%)도 늘었다. 청와대 측은 ‘대통령 행사 증가’와 ‘직제 개편’을 원인으로 들었다.

임장혁·권호·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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