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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글쓰고 판매까지…日 '산지직판제' 등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작가는 글을 쓰고, 출판사와 유통회사는 책을 만들어 판로를 개척하는 기존 출판시스템은 불변할까. 대답은 '노' (No)다. 아직은 미미하지만 출판계의 고정관념을 깨는 새로운 시도가 이웃 일본에서 시작되고 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최근 이노우에 유메토(井上夢人)등 유명 미스테리 소설가 10여 명이 출판사와 유통회사를 배제하고 직접 독자를 상대하는 이른바 '산지직판(産地直販)시스템' 을 가동한 사실을 크게 보도했다.

이노우에 등은 지난 해 말 불황으로 책 판매가 급격히 줄어들자 자구책으로 '프로작가들에 의한 산지직판 네트워크' 라는 간판을 내걸고 웹사이트 'e-NOVELS' 를 띄웠다.

이 사이트를 통해 작가들이 파는 것은 종래의 책이 아니라 문서압축파일인 'PDF파일' 형태로 된 작품데이타. 웹사이트에서 작품의 견본을 보여주고 완성된 작품을 보고싶어하는 사람에겐 유료로 작품데이타를 전송해주는 방식이다.

작품을 원하는 독자는 편의점에서 팔고있는 '웹머니' (Web-Money)라는 프리페이드 카드(돈을 미리 지불하고 그 금액만큼 웹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구입해 사용하면 된다.

이들은 웹에서 작품판매를 시작한 지 불과 한 달만에 6백여 권의 데이타를 판매했다. 금액으로는 수십만엔(수백만원)에 불과해 기존 책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작가들은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데 의미를 둔다.

이노우에는 "당분간은 전혀 팔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뜻 밖" 이라고 말한다.

작가들은 기존 출판사들이 안팔리는 책은 포기하고 잘 팔리는 신간에만 매달리자 생존을 위해 '산지직판 시스템' 을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이들은 5월부터 주간지 '아스키' 와 연대해 연재물을 잡지에 게재한 다음 완성품은 PDF파일로 만들어 팔 계획이다.

인기작가들을 중심으로 한 'e-NOVELS' 가 주목받기 시작하자 아마추어 작가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만화 쪽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다. 인기만화가 후쿠야마 야스하루(福山庸治)는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 '요지라관(館)' 에서 코믹물을 판매하는 '냉동 코믹관' 을 개설했다.

그는 "판매도 판매지만 작품을 보존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고 말한다. 만화는 전자화에 어울리는 소재이기 때문에 대형 출판사들도 새로운 비즈니스 대상으로 주목하고 있다.

시즈오카(靜岡)현 아타미(熱海)시로 이주한 평론가 후세 히데토시(布施英利)는 '사이트B' 라는 웹사이트로 메일매거진 구독자를 모집해 작가.출판사.서점의 '1인3역' 을 해내고 있다.

최근 고단샤(講談社) 에세이상을 수상한 이토 세이코의 수필집 '보타니컬 라이프' 도 웹에서 시작한 연재를 모은 책이다.

인터넷을 이용한 '산지직판 작가' 로 가장 알려진 사람은 나고야(名古屋)시에서 활동하는 카피라이터 다치이시 요이치(立石洋一).

웹상에서 작품을 판매해 2백50만엔(약 2천5백만원)을 벌어들이게 된 과정을 '인터넷 인세(印稅)생활 입문' (미디어팩토리)이라는 책으로 출간해 화제가 됐다.

그는 마에바시 리노(前橋梨乃)라는 팬네임으로 소설을 주로 발표했는데 전체의 8할까지만 웹상에 무료 공개하고 나머지는 작품당 5백엔(약 5천원)을 내야 볼 수 있게 했다.

그는 신작이 나오면 기존 독자들에게 메일로 알리는 방법을 사용했다.

조치(上智)대 우에다 야스오(植田康夫)교수(언론학)는 이런 인터넷을 통한 작품판매 움직임에 대해 "벽에 부딪힌 출판계에 새로운 힘이 될 것 같다" 며 "미디어간 융합이 진행되면 전혀 새로운 표현형태가 생겨날 가능성도 있다" 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국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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