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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명촌, 밥상의 근원을 찾아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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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정신으로 묵묵히 전통의 맛을 이어가고 있는 명인을 찾아내는 프로젝트. 이번 주제는 ‘소금’이다. 우리 식생활에 있어 소금은 약방의 감초격이다. 간을 맞춰 음식맛을 내는 데는 물론 건강 유지에도 필수요소다. 다만 불순물이 많이 섞인 소금은 고혈압·신장병 등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제대로 만든 제품을 먹어야 한다. 하지만 만드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다. 한 장인은 “마치 아이를 키우는 것 같다”고 비유했다. 최고의 소금을 만들어온 소금 장인 세 명을 만났다.

"바람과 햇빛이 맞을 때만 나오는 하늘이 내려준 소금 맛 보실래요"
날개달린 바람꽃, '신안머드 쏠트'박성춘 장인

전남 신안군 신의면에 위치한 '신안머드쏠트'의 박성춘(47)장인은 자신이 만든 토판염에 스스로 등급을 매긴다. 1등급의 이름은 ‘날개달린 바람꽃’. 이름처럼 소금 결정이 정사각형에 잠자리날개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박씨가 내세우는 최고의 명품으로 원래 박씨의 지인들에게만 판매되던 귀한 소금이다. “하늘이 내려준 소금이죠. 바람과 햇빛의 조건이 딱 맞아떨어질 때만 소출됩니다.” 장인인 박씨조차 예상하기 어려울 만큼 소출량이 적다.

처음 캐낸 소금은 2등급으로 분류된다. 가장 깨끗한 것으로 “어느 토판염과 비교해도 자신이 있다”고 박씨는 말한다. 너무 하얗고 깨끗해 장판염으로 의심받았을 정도다. 현재 일반적으로 판매되는 소금은 두 번째 캐낸 것으로 약간 검은 색을 띤다.

토판천일염은 단단히 다진 갯벌에서 전통방식으로 생산한 것을 말한다. 일정기온(섭씨 25도)이상 돼야 하며, 작업량도 비닐장판 또는 타일을 바닥에 깐 염전에 비해 10배정도 많다. 하지만 일반 소금에 비해 인체에 필요한 영양소를 다량 함유하고 있으며 쓰지 않고 뒷맛이 달짝지근하게 느껴진다. 1~3년 숙성하면 영양 밸런스가 더 좋아진다는 보고도 있다.

지역적 특성도 중요하다. 박씨의 염전은 전남 신안군 신의면. 목포항에서 약 2시간 배를 타고 들어가는 섬마을로 이미 TV 버라이어티 프로그램‘1박2일’에서도 소개된 바 있는 천일염의 고장이다. 신안군 남쪽 끝단에 위치해 제주도 쪽에서 올라오는 바닷물이 깨끗하기로 유명하다. 전국 천일염 생산량의 약25%가 이곳에서 나오며, 육지에서 52km 떨어진 청정지역으로 태평양 맑은 물이 처음 닿는 곳이기도 하다. 신안군의 천일염 생산자는 818명. 박씨는 이 가운데 5대 장인의 한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 “만드는 사람의 마음가짐, 그리고 그 마음가짐이 바람·햇볕 등의 자연과 하나가 될 때야말로 좋은 소금을 생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격 100g 2000원.

박성춘 장인의 좋은 소금 구별하기
소금을 맛보았을 때 쓴맛보다 짠맛이 나오며 뒷맛이 살짝 달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다.

"20~25일에 걸친 순수한 노력의 산물 아이를 키우는 것과 비슷하죠"
바람햇볕의 완벽조화, '태평소금'정구술 장인

전남 신안군 중도면 대초리에 있는 ‘태평소금’의 정구술(47) 장인은 일을 시작하고 3년 동안은 염전 청소만 했다고 고백한다. “업무의 기본은 청소입니다. 구석구석 보이지 않는 부분을 찾아 청소를 함으로써 모르는 것을 알게 되고,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덕분에 소금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소금의 품질을 결정하는 부분을 많이 알게 됐죠.”

정씨는 “소금은 20~25일간에 걸쳐 만들어지는 순수한 노력의 결정체”라면서 “바람·햇빛·바다·갯벌·사람 등 여러 요소가 균형을 이루어야 완벽한 소금이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아이를 키우는 일에 비견될 만하지요. 첫 단계부터 소금창고를 통해 밖으로 출고될 때까지, 증발지·결정지·창고 등 일일이 관심을 가지고 돌봐야 하죠. 만드는 사람의 자부심과 장인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태평소금은 단일규모로는 국내 최대 소금 생산회사다. 1953년부터 태평 염전에서 천일염을 생산해오고 있다.

천일염은 만든 시기·장소, 만들어지는 주변 환경, 만든 사람, 날씨 등에 따라 품질에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태평소금은 자체적으로 품질등급제를 시행하고 있다. ISO 및 HACCP시스템을 가동해 위생적으로 소금을 생산하고 기업 연구소를 통해 소금 연구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태평염전을 이루고 있는 갯벌이 유네스코의 생물권 보존지역으로 지정되면서 태평염전도 포함됐습니다. 현재까지 주변의 갯벌이 훼손되지 않고 보존돼 왔음을 뜻하는 것이죠.” 물론 앞으로도 개발·훼손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유지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씨는 소금보다 소금문화를 팔아야 하는 시대라고 강조한다. “외국의 경우 소금은 역사이자 생활이며 문화였습니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소금 생산의 전통이 계승되고 산업이 발달됐죠. 태평소금은 현재 소금 박물관을 운영, 이러한 역할을 해나갈 계획입니다. 전통식품 체험, 솔트 레스토랑미네랄 체험관 건립등을 추진해 한국 소금의 우수성을 알릴 생각입니다.” 가격 1kg 8000원.

정구술 장인의 좋은 소금 구별하기
소금은 짠맛단맛쓴맛감칠맛 등 여러 가지 맛을 가지고 있다. 혀끝에 소금을 올려놓고 침으로 천천히 녹여가며 맛을 느끼면 소금의 맛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맛있는 소금은 ‘짜다’기 보다 ‘맛있다’로 생각이 바뀌는 소금을 말한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먹던 자염내 식구 먹이는 것처럼 만들죠"
자연을 닮은 자염, '소금 굽는 사람들'정낙추 장인

2001년 충남 태안에선 자염 축제가 열렸다. 명맥이 끊어졌던 전통소금 자염(煮鹽)을 50여년 만에 복원, 재현한 행사였다고 소금굽는 사람들의정낙추(58) 장인은 말한다. “5년 동안 자염을 만들 수 있는 갯벌을 찾아 헤맸습니다. 정확한 문헌이 없어 태안지방에서 소금을 굽던 노인들의 고증과 현장지도를 통해 복원했죠.”

자염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 조상이 만들어 먹던 소금을 말한다. 1907년 일본인에 의해 천일염전이 개설된 이후에도 서해안을 중심으로 계속 생산되다가 1948년 이후 자취를 감췄다.

천일염이 바닷물의 수분을 햇볕에 증발시켜 만든 소금이라면 자염은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는 조금 때에 말린 갯벌 흙(함토)에 바닷물을 통과시켜 그 짠물(함수)을 8~10시간 동안 은근한 불로 끓여 만든 소금이다. 천일염보다 철분 20배, 아미노산을 10배 정도 함유하고 있다.

자염을 만들기 위한 조건은 까다롭다. 우선 조금 때 6~7일 동안 갯벌에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아 구둣발로 들어가도 흙이 묻지 않아야 한다. 갯벌 흙은 콩가루처럼 잘게 부숴 말리며 흙을 말리는 동안 비가 오면 모든 게 허사다. “자염은 조금과 사리라는 자연의 순환에 따라 만드는 소금입니다. 이렇다 보니 대량생산의 욕심을 버리고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 좋은 자염을 만드는 조건이 됩니다. 참고로 함수 3톤을 10시간동안 끓여(간장 달이듯) 겨우60kg을 생산합니다.” 당연히 기계화는 불가능하다. 끓이는 과정이야 가능 하겠지만 갯벌 흙을 말리는 과정은 무리다. 조금 때 갯벌 흙을 말리려고 기계가 갯벌로 들어가면 그 바퀴자국이 남아 다음 사리가 지나고 다시 조금이 와도 흙이 마르지 않아 함토와 함수를 만들 수 없다.

자염은 쓴맛과 떫은 맛이 없고 염도가 낮다. “음식을 조리하면 뚜렷이 차이가 납니다. 태안지방의 노인들은 아직도 천일염을 왜염이라고 부릅니다. 자염을 먹다가 천일염으로 입맛을 바꿀 때 한동안 고생했다는 말을 종종 하죠.” 자염과 천일염이 동시 생산되던 일제시대 때도 천일염보다 자염의 값이 훨씬 비쌌다고 그는 말한다. “물론 천일염도 좋은 소금입니다. 단 간수를 인위적으로 뺀 것보다 자연적으로 시간을 두고(3~5년) 빠진 소금이 좋죠.”

이런 인식 속에서도 그는 좋은 자염을 만들기 위해 “별의별 시도를 다 해봤다”고 고백한다. “어떡하면 진짜 좋은 자염을 많이 만들어 모든 소비자들이 부담 없이 먹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죠. 결국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열쇠는 자연이 쥐고 있었습니다.” 그는 “내 식구에게 먹이는 것처럼 만들고, 시간을 두고 기다리는 마음가짐과 약속을 지키는 일이 좋은 자염을 만들고 전통을 지켜나가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가격 100g 2000원.

정낙추 장인의 좋은 소금 구별하기
맛을 봤을 때 쓴맛이나 떫은맛이 없어야 한다. 좋은 소금은 양치질을 했을 때 입안이 텁텁하거나 잇몸이 옥죄지 않고 부드럽다. 손으로 소금을 집었다가 좍손을 폈을 때 손바닥에 소금이 눌어붙지 않은 상태가 간수가 빠진 소금이다.

[사진제공= 다리 컨설팅]

< 이세라 기자 slwitch@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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