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미술관 16일 '국사(하) 전' 개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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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고등학교 시절로 잠깐 되돌아가 머릿 속에서 국사교과서를 펴보자. 하(下)권의 첫 부분은 근대 사회의 태동을 적고 있다.

"(…) 서민층의 성장과 더불어, 조선 후기 사회에서는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났다. 즉, 농업, 수공업, 상업 등의 분야에서 자본주의의 맹아로 볼 수 있는 현상들이 나타났고, 신분제에 대한 비판과 근대 지향적인 실학 사상이 대두하였다…" .' 근대 사회를 향한 이러한 움직임은 1897년 고종이 황제로 즉위한 대한제국의 출범으로 구체화된다.

이러한 기초 지식을 갖고 오는 16일 오후5시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관장 박강자)에서 시작하는 '국사 하' 전을 방문해보자. 이 전시의 핵심은 '미술관에서 배우는 역사' 다.

역사책의 내용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며 체험하는 것이다. 딱딱하고 건조한 정치.사회만 다루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신변잡기적인 생활사에만 치우치지도 않는다.

문학.음악.연극.영화.무용.미술.체육.만화 등 문화 예술 전반의 시대적 흐름을 시청각 자료를 통해 좇아가며 지나간 시대를 간접적으로 살아보는 자리다.

기획자 신정아 큐레이터는 "한국 근.현대 1백년사를 따라가는 동안 관람객들이 역사란 닫혀진 고루한 것이 아니라 열려있고, 진보의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으면 한다" 고 말한다.

각 층마다 시대적 배경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담은 대형 실크 스크린 걸개가 관람객을 맞는다. 1층은 해방 정국(1945~48), 2층은 대한제국부터 해방 이전(1897~1945), 그리고 지하 1층은 해방 이후(1948~97)로 꾸며진다.

지난 6개월간 여러 소장자와 각종 박물관 등을 찾아다니며 빌린 방대한 자료 7천여점이 기다리고 있다. 교육 효과가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문학과 미술.무용.체육 등은 원본이나 그림 도판, 사진으로 보여준다. 한성순보(1883년), 독립신문(1896년), 김동환의 '국경의 밤' (1925년), 1920년대 동인지 '폐허' , 해방 후 각종 신문 창간호와 호외, 계간 '창작과 비평' 등의 잡지, 최승희.홍신자.육완순 등의 춤 공연 장면, 추사 김정희부터 안중식.허련.고희동.나혜석.도상봉 등 화가들의 작품 도판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만화의 경우 만화가 이두호씨가 특별 제작한 '머털이가 본 한국 만화사' (1910년부터)가 걸린다.

영화.TV드라마와 음악 분야는 보다 입체적이다. 포스터와 전단뿐 아니라 자유부인.영자의 전성시대.수사반장.아씨.여로.장희빈 등 시대별 주요 작품의 장면을 10~15분 단위로 편집해 상영한다.

전시장마다 설치한 스피커에서는 시대별 유행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뿐 아니다. 대중가수들이 미술관 3층 콘서트홀에서 '가요사 이야기' 라는 제목으로 미니 콘서트를 갖는다.

패티김.남진(3월 19일).양희은(2월 27일).이승철(3월 5일).이선희(4월 9일) 등이다.

'국사 하' 전은 이 미술관 기획전 예산의 5배에 해당하는 1억원이 투입된 대형 전시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미술관들이 좀처럼 지갑을 열려 들지 않았던 그간 상황을 생각해보면 미술 팬들에게 반가운 변화다.

4월 12일까지. 입장료 성인 2천5백원. 02-720-5114.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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