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24시] 고개숙인 '기술대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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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는 지난달 말 시정 연설에서 '과학기술 입국' 을 기치로 내걸었다. 제조업 중심의 '기술입국' 을 넘어 첨단과학에서 21세기 일본의 비전을 찾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새 기치는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10일 X선 천문관측위성을 실은 M5 로켓 4호기의 발사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번 발사 실패는 일본의 자존심을 구겨놓았다. 1998년 2월 이래 로켓 결함으로 연속 세번째 위성을 본궤도에 올려놓지 못한 것이다.

뿐만 아니다. M5는 일본 우주개발의 심벌이다.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세계 최대급 과학기술위성 발사용으로 각광을 받아왔다.

우주과학연구소는 이 로켓으로 소혹성 탐사기. 달 탐사기도 쏘아올릴 계획이었다. 이번 실패로 장기 계획은 물론 X선 천문관측도 뒤뚱거릴 것이 분명하다.

더구나 이번에는 로켓 자체의 치명적 기술 결함도 드러났다. 고온에 노출된 로켓의 노즐(분사구) 파손이 발사 실패의 1차적 원인이었다. 로켓 심장부의 고장으로 위성 발사에 실패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그래서 위성발사를 주관한 문부성 우주과학연구소 직원들은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있다.

M5 로켓 발사 실패의 파장은 엄청나다. 과학기술청 산하 우주개발사업단(NASDA)의 실용위성 발사도 더 늦춰질 전망이다.

NASDA는 지난해 H2로켓의 위성 발사 실패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H2로켓을 아예 포기하는 대신 차세대 H2A에 승부를 걸기로 했다. 1백60억엔을 그냥 버리는 결단이었다.

그러나 H2A 로켓이 M5 로켓과 같은 고체연료를 쓰고 있어 이에 대한 재점검이 불가피해졌다.

정부는 일본의 우주항공 기술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다. 한 신문은 "국제사회에서 '일제 위성 또 실패' 라는 딱지가 붙게 됐다" 고 꼬집었다.

우주항공 비지니스 참가에 뒤처질 것이라는 우려다. 일본은 미국과 러시아에 버금가는 우주개발 기술 확보를 국가적 과제로 삼아왔다.

지난해 H2로켓 발사 실패 충격속에서 중국의 우주선 시험 발사 성공 소식이 전해진 이후 더욱 초조해하고 있다.

이번 실패로 우주개발 분야에서 3류국으로 전락할 지 모른다는 일본 정부의 위기감은 상당 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내각이 위성발사 실패 직후 우주과학연구소와 NASDA로 돼 있는 우주개발 체제를 한데 합치기로 한 것은 이 때문으로 보인다.

일부에선 우주개발 분야에서 실패는 다반사라고 자위한다. 그러나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은 국책사업의 잇따른 실패에 일본 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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