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사계] 위험한 풍습 '설날 폭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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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춘절(春節.설)인 지난 5일 0시쯤. 베이징(北京) 신주택 개발지 왕징(望京)에서 잇따른 폭발음이 들려왔다. 가스폭발 사고라도 난 것일까. 급히 창가로 달려가 보니 거리엔 폭죽 터뜨리기가 한창이었다. 하늘이 무너져내리듯 계속되는 폭죽소리에 얼이 빠질 지경이었다.

중국인들이 춘절에 잡귀를 물리치고 복을 빌기 위해 폭죽놀이를 즐기기는 하지만 올해처럼 요란하기는 처음이다. 특히 1993년부터 베이징 시내에서는 폭죽놀이가 금지됐는데 어찌된 영문일까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날 잘못 터진 폭죽에 한 여중생이 머리를 다쳐 급히 병원으로 실려갔으나 끝내 숨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베이징시가 폭죽놀이를 금지한 이래 처음으로 발생한 사망사고다.

7일자 북경청년보(北京靑年報)에 따르면 4~6일 사이 폭죽놀이를 하다 눈을 다쳐 중심지의 퉁런(同仁)병원의 안과를 찾은 환자만 4세부터 64세까지 54명에 이른다. 이중 한 명은 눈을 잃었고 18명은 중상이었다.

베이다(北大)병원과 지수이탄(積水潭)병원은 물론 군병원인 해방군304병원에도 폭죽으로 눈을 다친 환자들이 줄을 이었다.

뿐만 아니다. 4~5일 이틀간 불꽃.폭죽놀이로 발생한 화재가 지난해의 34건에서 65건으로 느는 바람에 소방국은 연휴도 잊은 채 바쁜 나날을 보냈다.

베이징 시당국이 1월 초부터 불꽃.폭죽놀이 금지 전단을 2백50만장이나 뿌리고 전화와 방문계몽에 나섰어도 큰 효과를 보지 못한 셈이다.

중국은 92년부터 광둥(廣東)성의 광저우(廣州)를 시작으로 사고와 화재방지를 이유로 춘절의 폭죽놀이를 금지하기 시작했다.

97년엔 전국 2백92개 도시로 확대됐다. 그러나 98년부터 폭죽소리가 조금씩 들리는가 싶더니 올해는 아예 벼락치는 소리로 커졌다.

중국인민대 리루루(李路路)교수는 "법률로서 민속을 규제할 수 있겠느냐" 고 말했다.

중국사회과학원 사회학 연구원인 마윈제(馬云杰)교수는 "예부터 제왕이 폭죽놀이를 통해 백성들과 어울리며 운을 빌었던 이 풍속이 1천년 가까이 지속된 것은 그 만큼 가치가 있었기 때문" 이라며 폭죽놀이를 옹호했다.

하지만 퉁런병원 의사인 둥위윈(董玉云)은 "청각장애 아동 3백15명을 조사한 결과 2백91명이 폭죽놀이 탓에 귀를 다쳤다" 며 폭죽놀이 폐지를 주장했다.

폭죽놀이를 둘러싼 갑론을박에 관계없이 정월 대보름엔 또 한차례 대대적인 폭죽놀이가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법이 뭐라 해도 형편이 허락한다면 예전에 살던 그대로 살고 싶기는 어디나 마찬가지인 듯 싶기 때문이다.

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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