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쓰러지는 유망벤처 민·관 손잡고 살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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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세계 최고의 컬러강판 기업을 만들어 보답하겠습니다. "

지난 29일 대구시 동구 대구상공회의소 4층 국제회의장. MCM-Tech(옛 대성물산.경북 칠곡군 왜관읍)에 대한 대구.경북엔젤의 투자 조인식에서 이창원(49)사장은 30여명의 투자자들에게 거듭 머리를 숙였다.

이창원사장은 박양우 대구.경북지방중기청장과 조봉진 계명대 벤처창업보육센터 단장.김규재 대구상의 부회장의 손을 꽉 잡았다.

이들이 아니었으면 지난 3년동안 그가 개발해온 세계 최초의 컬러강판 기술은 물거품이 되고 자신은 채권자들에게 쫓겨다니는 신세가 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MCM-Tech의 주생산품은 컬러강판. 종이에 인쇄하듯 강판에 원하는 색상.디자인.문양.문구를 인쇄할 수 있도록 만든 혁신적 제품이다.

컬러 냉장고 등 기존 제품은 철판에 PVC필름을 접착한 것인데 비해 컬러강판은 철판에 직접 인쇄한 것으로 유명한 그림과 개인사진 등도 인쇄할 수 있다.

세계 수준의 인쇄기술을 자랑하는 조폐공사에서 잔뼈가 굵은 李사장 등 10여명의 핵심 인력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개발했다. 자체 개발한 잉크와 도장기법이 그 요체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 비슷한 제품이 있긴 하지만 내구성과 색상.가격 면에서 단연 앞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 최대 철제문 제작사인 판판그룹은 세계 4개국의 제품을 비교한 뒤 지난해 9월 월평균 1백20만달러어치씩을 주문하는 신용장을 보내왔다.

그러나 막상 제품을 생산하려드니 자금이 한푼도 없었다. 3년동안 기술개발에만 개인재산 등 50억원을 쏟아부은 결과 그나마 마련해놓은 돈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그래도 신이 나 신용장을 들고 신용보증기금과 수출보험공사.대구은행 등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모두 '절대불가' . 기술성은 인정하지만 매출이 없어 대출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답답한 마음으로 지난해 10월 중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혀 알지 못했던 朴청장을 찾았다. 하소연을 듣고 담당직원으로부터 믿을만한 기업이라는 보고를 받은 朴청장은 趙교수 등과 연락해 머리를 맞댔다.

기술개발에 힘쓰느라 매출이 거의 없는데 생산자금 5억원을 마련하지 못한다는 것은 기업뿐 아니라 지역경제에도 손해라는 판단을 내렸다.

朴청장 등은 안된다는 금융기관에 유망기업을 살리자고 직접 설득했다. 특정 기관이 손해보는 것을 피하기 위해 여러 곳에 분담시켰다. 한달 뒤 신보.수출보험공사가 각각 1억원, 대구은행 2억원 등 4억원이 마련됐다.

이 자금으로 당장 급한 불은 껐고 대구.경북 엔젤클럽과 서울엔젤그룹에서 투자설명회를 가졌다. 2차에 걸친 설명회 끝에 모인 자금이 약 9억원. 적게는 4백50만원에서 많게는 2억원까지 48명의 개인들이 투자했다.

李사장은 이 자금을 생산라인 증설에 쓰기로 했다. 엔젤투자가 성공적으로 유치된데 이어 제품의 우수성이 알려지면서 내수와 수출 문의도 잇따르고 있다. 삼성.LG.대우 등 가전 3사와 주택공사가 구입의사를 밝혀왔고 외국에서도 주문이 들어왔다.

투자조인식이 끝난 뒤 朴청장은 "지역경제를 살리자는 지역인사와 지역주민의 힘으로 우수한 기술을 가진 벤처기업이 살아날 수 있어 큰 보람을 느낀다" 고 말했다.

대구〓이석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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