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도전21] KBS국악관현악단 정수년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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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우리 음악은 '국악' 이라는 이름으로 한정시키고 서양의 고전 음악을 '음악' 이라고 부르는 현실에서 국악 연주자들이 설 자리는 너무나 좁다. 바이올린.첼로 연주자들이 앞다퉈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무대에 설 때 이들은 무명의 설움을 견뎌야 한다.

실험적인 국악 실내악단 슬기둥의 창단 멤버이자 KBS국악관현악단 단원으로 있는 해금 연주자 정수년(36)씨도 이런 사정은 마찬가지. 하지만 주어진 여건을 원망하기보다는 좀더 많은 사람들이 국악을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 노력 중의 하나가 친숙한 서양음악을 해금으로 연주하는 일이다. 27일 오후 7시 30분 KBS홀에서 막이 오르는 KBS국악관현악단의 청소년음악회에서 정씨는 가야금 4중주단 '사계' 와 함께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탱고곡 '오블리비온' 을 해금으로 선보인다.

정씨는 "해금 연주에는 잘 쓰지 않는 고음이 많아 연습이 어려웠다" 면서도 "피아졸라 원곡의 바이올린 선율이 솜사탕같다면 내 연주는 간을 잘 맞춘 토속적인 맛" 이라며 관객들의 반응에 자신감을 내비친다.

잘 알려진 곡을 국악으로 들려주는 것이 과연 국악 대중화에 직접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까. "우리 악기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거죠. '이 악기는 도대체 무슨 악기이기에 바이올린으로 연주할 때와 이렇게 느낌이 다를까' 하고 관객들이 궁금해하면 일단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관심이 기초가 되기 때문이죠. 이 단계에서 좀더 나아가면 국악이냐 아니냐의 경계를 넘어 음악 그 자체를 흡수하게 되는 거지요. " 많이 들어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데, 바로 많이 듣게 만들어 주는 장치가 친숙한 명곡 연주라는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음반작업에도 관심이 많다. 대중이 듣기 편한 음반을 내기 위해 뉴에이지 듀오 '시크릿 가든' 의 곡 등을 국악으로 편곡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많은 국악기 중에 왜 하필 해금이 크로스오버 작업에 각광받는 것일까. "해금은 바이올린과 같은 찰현 악기에요. 바이올린이 주는 강렬한 느낌처럼 현이 주는 강한 음색이 매력적이라고나 할까요. "그렇지만 어려움도 만만찮다.

올해 가질 개인 발표회에서 연주하려고 마음먹은 '지고이네르바이젠' 도 해금의 특성 때문에 원곡에 나오는 화음을 만들어 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악보를 보니 내가 이걸 해낸다면 정말 해금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어렵다고 포기하기보다 한계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연주자가 있어야 그 악기도 발전하지 않을까요. " 소리가 마음에 들기 전까지는 감히 이 곡을 들고 무대에 서지 않겠다는 정씨는 올해에 안되면 내년, 내년이 안되면 그 이듬해라도 꼭 해내겠다고 벼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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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가 국악을 현대적으로 접근하려고 시도한다고 해서 전통을 소홀히 하는 연주자는 아니다. 전통의 바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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