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4·13 길목 병무비리 척결 왜 나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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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현 정권에서 시민단체의 위상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선거 개입에 이어 부패 척결 문제까지 정국 관리의 한복판에 서 있도록 시민단체를 밀어주고 있다.

청와대는 21일엔 국회의원 등 사회 지도층 인사의 병무비리 의혹을 제기한 반부패국민연대의 활동을 적극 뒷받침했다.

사정(司正)참모인 신광옥(辛光玉)민정수석은 반부패국민연대의 고발이 있으면 당연히 수사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표시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현 정권과 시민단체의 관계는 밀애(密愛)수준이라고 할 만하다" 고 자평했다.

여기에는 시민단체를 국정 운영의 중요한 축으로 삼겠다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구상이 깔려 있다.

이 관계자는 "金대통령은 자민련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와의 공동정권 운영의 문제점을 실감하고 있다" 면서 "소수 정권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선 외부의 응원군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고 설명했다.

金대통령의 이같은 구상은 시민단체의 선거 개입 허용으로 본격 시작됐다.

특히 시민단체의 선거 개입이 단순한 선거운동이 아니라 부패 척결과 맞물려 사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이번 병무비리 문제에서 드러난 셈이다.

이같은 시민단체와 수사기관을 연계한 사정은 다른 부문으로도 계속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이 관계자는 "시민단체마다 관심 분야가 다르지 않으냐" 면서 이런 관측을 뒷받침했다.

그 가운데 병무비리를 가장 먼저 들고 나선 것은 군 가점제 논란에서 보듯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대목이고, 이를 총선 지지로 연결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여권이 이처럼 시민단체의 고발→수사라는 방식을 선택하게 된 것은 총선용이라는 야당의 반발을 처음부터 잠재우려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청와대는 상당한 병무비리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다른 고위 관계자는 "아군(여당 정치인)이 다쳐도 할 수 없다" 며 의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비리의 내용이 야당쪽을 주로 겨냥한 것으로 드러나면 총선 정국은 경색될 수밖에 없다.

야당이 표적 사정 의혹을 제기할 경우 총풍.세풍 사건처럼 사건의 본질은 없어지고 정치공방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 정국 관리에 있어 시민단체의 과잉 개입은 포퓰리즘(대중 인기 영합주의)의 논란을 계속 낳을 것으로 보인다.

김진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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