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식아동 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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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1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아현동 무료급식소 '나눔, 신나는 집' . 소복이 쌓인 눈길을 헤치고 20여명의 초.중학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날마다 우리에게 양식을 주시는… 잘 먹겠습니다!" 점심시간에 맞춰 부르는 노랫소리가 그치자 방안에 모여앉은 아이들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식판에 얼굴을 박고 허기를 달랬다.

초등학교 1학년 K군(7)은 아침도 거른 탓인지 쇠고기 미역국에 숟가락이 자주 갔다.

이곳에서 점심.저녁을 먹은지 벌써 한달이 돼간다.

K군은 어머니는 가출했고 실직한 아버지와 함께 산다.

학기중에는 학교에서 급식을 먹었지만 방학이 시작되자 학교에서는 '상품권' 을 주고 점심을 해결하라고 했다.

K군은 "아빠에게 상품권을 드렸더니 아빠가 라면 몇개 사다놓고 나머지는 술을 사서 드셨다" 고 말했다.

서울 구로구 궁동 '평화, 신나는 집' 에도 매일 30~40명의 초.중학교 학생들이 와 끼니도 해결하고 저녁까지 놀고 간다.

이 기관을 운영하는 박도양(朴慶陽.44)목사는 "생활보호대상자나 편부.편모 가정 자녀들이 많아 방학때 무료 급식을 해주지 않으면 세끼를 굶는 아이들이 많다" 고 말했다.

방학중 학교 문이 닫히자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무료급식소에 몰리는 '배고픈 아이' 들이 많아 '국제통화기금(IMF)체제 탈출' 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심지어 아이들 7백여명이 18일 '배고픈 아이들을 위한 평화의 거리행진' 에 참여해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현재 교육부가 올해 예상한 중식지원 대상 학생수는 총 16만4천여명. 해마다 수가 늘고 있지만 이들 대부분은 방학중엔 급식 혜택의 '사각지대' 에 놓여 있다.

◇ 무엇이 문제인가〓서울의 경우 지난 학기중 학교에서 무료 급식 혜택을 본 2만9천7백여명 가운데 이번 방학기간중 9천9백여명만이 중식지원 신청을 해 상품권을 받았다.

방학중 신청자가 크게 준 것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정작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이 조사과정에서 '못살고 굶는 아이' 에 속할까봐 신청을 꺼리는 것 같다" 고 말했다.

교육부는 올 방학기간 결식학생을 위해 상품권 지급.무료 지정 음식점 운영을 위해 1백21억3천만원을 썼다.

상품권의 경우 12만원을 방학기간 내내 쪼개 써야 하는데 특히 초등학생에게 이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지적이다.

또 지정 음식점 이용도 서울시교육청 조사 결과 이용률이 60%에 밑돌 정도로 아이들의 자존심을 꺾는 지원 방식이어서 막대한 돈이 적재적소에 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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