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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선거 시작됐다] 표값 인플레…억대 브로커 등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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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기업체 간부인 K씨는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해놓은 상태다. 그는 공천신청에 앞서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십시일반으로 2억원의 자금을 마련해두었다. 나름대로 자금 용처에 맞게 지출 시간표도 짰다. 그러나 공천도 받기전에 1억원의 돈을 쓰고 말았다.

지난 연말 지역민의 전방시찰에 5백만원이 들었다. 지역유지들을 찾아다니며 먹은 밥값이 2천만원. 여론조사비용 2천만원. 사무실을 내고 집기를 사는데 4천만원.

최근에는 듣도 보도 못했던 사람들이 찾아와 "표를 갖고 있으니 돈을 달라" 고 해 얼떨결에 근 1천만원을 뜯겼다. 한사람은 매몰차게 "돈 없다" 며 돌려보냈다가 그가 최근 지역을 돌며 "K모는 문제가 많은 사람" 이라고 비난하고 다녀 난감한 입장이다.

16대 총선을 80여일 앞두고 공천도 확정되기 전에 때아닌 돈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입후보자들 사이에선 "지금 돈을 써야 한다" 는 말이 마치 철칙처럼 통한다.

◇ 돈 왜 지금 쓰나〓국회의원 보좌관 생활 8년째인 朴모(39)씨는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특징은 시민의 참여가 높다는 점이다. 따라서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감시 등살에 배겨나기 어렵다.

때문에 지금 돈을 쓰고 선거기간 중엔 상대후보의 자금살포 적발에 주력하자는데 선거 관계자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고 말했다.

한 정당 선거 관계자는 다른 시각에서 돈선거를 분석했다. "여야 각 정당이 공천의 최대 기준을 지역여론으로 삼은 바 있고 특히 물갈이 여론이 비등해지면서 인지도 제고 및 호의적 여론조성을 위한 사전선거운동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

◇ 브로커 극성〓이런 사정을 선거꾼들이 모를리 없다. 브로커들은 벌써부터 의원회관과 출마 예정자들의 사무실을 찾아나섰다. 출마예정자치고 '××향우회 회장' , '××친목회 총무' 나 선거 전문 브로커들의 방문을 받지 않은 이가 없다.

선거전이 조기 과열된 곳에선 오히려 후보진영에서 브로커를 찾는 새로운 현상도 있다. 조직 정비가 시급하기 때문. 호남지역 한 지구당 관계자는 "새로 조직 구성에 나선 인사들이 동(洞)을 책임지는 동책 한명에 보통 3백만~5백만원을 선수금조로 주고 있다" 고 전했다.

한나라당 선거 관계자는 "거물급 브로커의 경우 지난 15대 총선때만 해도 1천만~2천만원이었던 스카우트비가 3천만원으로 올랐다" 고 말했다.

여당 중진의 가세로 이미 선거전에 돌입한 부산의 한 지역구에선 억대 브로커까지 등장했다고 한 정당 관계자가 주장했다.

◇ 왜 많이 드나〓우선 새로운 지출처가 생겼다. 컴퓨터 통신을 활용하는 네티즌들의 힘이 커지면서 인터넷 홈페이지를 치장하는데 1천만원을 들이고 있다. 현역 의원중 1백50여명이 홈페이지를 갖고 있다.

선거법상 금지된 소형 명함 대신 CD롬을 명함으로 활용하는 의원들도 늘고 있다. 컴퓨터에서 CD롬을 가동하면 후보자의 동영상이 뜨는 이 사이버 명함을 찍는 비용은 4천만원 정도(3만장 기준). 벌써 11명의 의원이 주문했다. 유행처럼 너도 나도 따라하는 여론조사 비용도 새로 늘어난 항목. 지지도 조작을 위한 위장 여론조사 비용도 급증하고 있다.

상대후보를 비난하는 전화자동응답(ARS)조사에 한 공천신청자는 이미 2천만원의 돈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후보들에게 손을 벌리는 유권자들의 구태(舊態)도 여전하다. 특히 과거엔 각당의 텃밭이랄 수 있는 호남.영남에선 덜했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공천자체가 곧 당선처럼 인식된터라 다른지역보다 구태가 일찍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연말 호남지역 국민회의 L의원측은 지역내 친목모임을 주도하는 한 주민의 방문을 받았다.

그는 "동네 어르신들 청와대 경내 관광을 계획하고 있으니 협조해달라" 고 했다. L의원측은 청와대 관계자에게 부탁해 관광 순서를 앞당겨 준 것은 물론 버스 대절료.식사비 등을 부담하며 2백만원을 지출했다.

지구당 당직자들의 돈 요구도 늘고 있다. 수도권의 한나라당 모지구당 중간 관리책들은 "돈을 더 주지 않으면 여당후보를 돕겠다" 며 가버렸다.

공식 행사비도 더 들어간다. 지구당 개편대회나 창당대회에만 최소한 2천만원이 사용된다. 홍보물에 신경 쓸 경우 4천만~5천만원은 거뜬히 넘는다.

◇ 어떻게 단속의 눈길 피해가나〓출마 후보 대신 대리인이 나서 금품.향응을 제공한다. 소모임때 읍.면.동 관리책임자들이 후보를 대신해 찬조금을 내거나 식사비를 계산하는 것이 한 유형. 자민련 충북지역 한 의원은 "한나라당 후보가 관리장들을 시켜 돈을 주고 있다" 고 주장했다.

선심관광은 회비를 부담하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얼마전 계룡산으로 관광을 다녀온 국민회의 서울지역 지구당 관계자는 "회비를 받는 것처럼 해 선관위의 눈길을 피한다" 며 "회비 1만원은 내도 그만, 안내도 그만"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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