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토야마 정권, 노무현 정권과 닮은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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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정권은 한국의 노무현 정권과 닮았다?”

8일자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게재된 4면 특집 기사의 부제다. 이 신문은 1개 면을 할애, 대등한 미·일 관계 재정립, 성장보다는 분배를 강조하는 하토야마 정권과 2003년 출범했던 한국의 노 전 정권 간에 유사점이 적잖다며 이를 비교 분석했다. 신문은 “두 정권이 닮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건 비슷한 대미외교 방식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 주도의 세계질서 반대=하토야마 대표는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에 비판적이다. 실제로 그는 취임 전 뉴욕 타임스에 낸 기고문에서 “일본은 미국발 글로벌리즘이라는 시장원리주의에 농락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 주도의 세계화 시대는 막을 내리고 다극(多極)체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까지 했다. 총리 취임 후엔 ‘긴밀하고 대등한 미·일 관계’를 강조하면서도 한·중·일이 중심이 되는 동아시아 공동체 추진을 공언하며 미국과 거리를 뒀다. 주일미군 재편 문제를 놓고는 미·일 간의 갈등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신문은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미국과의 대등한 관계’를 제창하는 동시에 한국이 미·중·일 3국 간의 균형자 역할을 하겠다고 나선 바 있다”고 소개했다. 결국 이는 한·미 군사협력에 영향을 미쳤고, 주한미군 감축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신문은 밝혔다. 전 정권(자민당)의 대미 추종 외교를 비판하고, 미국에 할 말은 하겠다는 하토야마 총리의 언동과 영락없이 겹친다는 것이다.

모리모토 사토시(森本敏) 다쿠쇼쿠(拓殖)대 교수는 “노 정권 초기 한·미 관계가 껄끄러웠던 시절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반도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하는 위기론이 제기됐다”며 “지금의 미·일 관계가 계속된다면 동맹의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분배·서민 정책 중시=경제·노동정책에서도 ‘성장보다는 분배’를 강조한 노 정권이나 ‘기업보다 서민생활이 최우선’이라는 하토야마 정권 모두 비슷한 색을 띠고 있다는 게 이 신문의 분석이다.

그러나 미국을 보는 시각과 관련, 두 사람의 내면에 흐르는 기류는 크게 다르다. 신문은 “변호사 시절 군사정권과 대립해온 노 전 대통령은 확고한 반미주의자였고 정권 내에도 그런 인물을 잇따라 기용했다”고 했다.

이에 비해 6년간 미국 유학을 경험한 총리는 민주당 정권을 반미주의자로 구성하지는 않았다.

하토야마 총리의 성향에 대해 친동생인 하토야마 구니오(鳩山邦夫) 전 총무상은 “형은 좋게 말하면 유연하고, 나쁘게 말하면 권력 유지를 위해 아메바처럼 변신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외교·경제 등 정책들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소리다. 신문 역시 “반미 성향을 보이던 노 정권도 이후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고 3600명이라는 대규모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는 등 현실노선으로 선회했다”며 하토야마 총리의 외교노선 변화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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