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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유학파 2세들 新경영 대구 섬유업 '르네상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정방기 25대가 짜내는 제품이 같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 지난해 5백여가지에 이르는 철저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IMF 한파를 이겨냈습니다. 미국에서도 이탈리아 수준이라고 인정합니다. "

대구시 달서구 월성동 성서공단내 조양모방. 24시간 가동으로 기계들이 시끄럽게 돌아가는 가운데 2세 경영인인 민웅기(閔雄基.38)사장은 의욕에 차 있다.

"원사 가공에 관한 한 기술력이 국내 최고 수준입니다. 일본제품과 겨뤄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

30년전부터 한자리(경북 경산시 남천면)에서 사업해오며 최근 부친에게서 경영 바통을 이어받은 ㈜동화 한우관(韓佑官.41)상무는 자신감이 넘친다.

閔사장.韓상무와 같은 30대 후반 40대 초반의 2, 3세 경영인들이 대구 섬유업계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창업 1세들이 마련한 기반 위에 해외 유학과 실무경험으로 밀라노 프로젝트로 불리는 대구.경북지역 섬유업계 부흥의 주역을 선언하고 나섰다.

이 지역의 대표적인 2세 경영인으로 꼽히는 인물은 20여명. 두사람외에 일승섬유 손희걸 부사장, 동영염직 조민성(趙敏成.37)이사, 달성견직 안찬호(32)실장, 유창섬유 김도균 사장, 태왕물산 권준호(權俊鎬.35)상무, ㈜대광 백승한 사장, 동성교역 민은기 부사장, ㈜성안 박상완 전무, 대동염색 박병균 이사, 신라교역 박재흥 전무, 이화섬유 박노기 전무, 현대화섬 이상목 이사 등이다.

2세 경영인들의 특징은 전공지식과 실무를 겸비한 실력파라는 점. ㈜동화의 韓상무는 일본 후쿠이(福井)대학 섬유공학 석사출신이다.

가업인 섬유업 외길을 걸으려 영남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의 대표적 섬유도시인 후쿠이현에서 공부한 데 이어 유명한 직기회사인 스타코마에서 1년동안 현장체험을 했다.

조양모방의 閔사장은 미국 뉴욕 롱 아일랜드대에서 경영학석사(MBA)학위를 받았다. 일승섬유 孫부사장은 미국 웨스트 코스트대와 유타 주립대에서 경영정보학 및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태왕물산 權상무.동영염직 趙이사.㈜성안 朴전무.현대화섬 李이사 등도 미국에서 공부한 유학파다.

이들 2세 경영인들은 신제품 개발과 설비투자.기술개발에 힘써 대구지역 섬유업계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대구지역 섬유업계가 양극화되고 있습니다. 대기업보다 실력을 바탕으로 한 2세 경영인이 경영에 참가한 중소업체들이 제품 고급화와 차별화를 바탕으로 매출과 수출이 크게 늘었습니다. " (대구상공회의소 임경호 조사부 차장) 2세들의 경영 참여에 따른 가장 큰 변화는 신규 설비투자다. 창업세대들은 보수적인 성향으로 경기전망이 어둡다며 새로운 투자를 주저했다.

그러나 동영염직은 창업주의 장남인 趙이사가 주도해 20억원의 투자를 일으켰다. ㈜동화도 韓상무가 들어서며 10여대의 가연기를 새 것으로 바꿨다. 조양모방은 2세 참여를 전제로 1997년 공장을 신축했다.

신규 설비를 바탕으로 2세 경영진들은 주문형 임가공보다 자체 상품 개발에 힘썼다. 1백% 대기업의 임가공에 의존했던 조양모방은 임가공업의 비중을 20%로 낮췄다. 그 결과 매출이 60억원대에서 지난해 1백40억원으로 불어났다. 동영염직 趙이사는 "납기를 반드시 지키고 불량률을 0%에 가깝게 끌어내렸다" 며 "부채비율도 4분의 1로 낮췄다" 고 밝혔다.

2세들은 섬유업계의 연관효과를 잘 알아 서로 긴밀한 협조체제를 갖추고 있다. 지난해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섬유기계전시회 참석을 계기로 두달에 한차례씩 만나며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업계 발전을 꾀하기 위한 대외활동도 활발히 전개중이다. 밀라노 프로젝트에 실무위원으로 참가해 현장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

조주현(趙珠鉉)대구시 섬유진흥과장은 "섬유업계는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제사에서 패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협력이 필요하다" 며 "실무능력과 개혁 성향을 가진 젊은 세대의 협력으로 섬유업계의 르네상스가 한발 가까워질 것으로 기대한다" 고 밝혔다.

대구〓이석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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