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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와 금기의 미학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39호 15면

사춘기에 접어든 딸아이의 성화에 얼떨결에 보게 된 영화 ‘트와일라잇’은 뱀파이어와 평범한 소녀의 사랑을 그린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딸아이 또래의 문화에 대한 호기심으로 보기 시작한 영화에 흠뻑 몰입했던 것은 영화에 깔려 있는 다분히 성적인 이슈들이 필자의 직업병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부부의사가 쓰는 性칼럼

뱀파이어와 관련된 전설은 세계 곳곳에 있지만 서구 사회에서 뱀파이어가 널리 알려진 것은 19세기 영국의 작가 브램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가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으면서다. 드라큘라는 15세기의 실존 인물인 루마니아의 공작 블라드 체페슈가 모델인데, 정작 루마니아에서는 독립 영웅인 블라드 공작이 흡혈귀로 묘사되는 것을 지금도 탐탁지 않게 여긴다고 한다.

뱀파이어가 처음 인기를 끈 19세기 영국은 빅토리아 시대로, 금욕주의가 성행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이 그러했듯, 뱀파이어 이야기의 유행도 금욕주의에 대한 반작용이다. 정신분석이론을 빌리자면, 뱀파이어는 도덕적 초자아에 반해 원초적인 욕망의 상징 ‘이드’의 현신이라 할 수 있다.

1990년대 뱀파이어가 다시 인기를 끈 것은 코폴라 감독의 ‘드라큘라’와 톰 크루즈 주연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때문이다. 당시 에이즈의 창궐로 프리섹스에 대한 두려움이 고조되면서 뱀파이어가 재등장했다는 해석이 많다.

그러면 왜 이 시점에서 또다시 뱀파이어인가? 서구문화권에서는 사춘기에 성관계를 시작하는 것이 이젠 흔한 일이 되었다. ‘트와일라잇’에서 여주인공 벨라의 남자친구인 뱀파이어 에드워드는 벨라의 피냄새에 강한 식욕을 느끼면서도 초인적인 의지로 벨라를 지켜준다. 마치 혼전 순결을 목숨처럼 지키려던 과거의 우리 모습처럼 말이다.

에드워드를 만난 것 자체가 위험한 일임에도 이를 무릅쓰는 벨라에게는 성관계는 말할 것 없고, 키스나 스킨십조차 생명을 건 모험이다. 사실은 그래서 더 스릴 넘치고 흥분되는 것이다. 성적인 것이 위험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던지는 소설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두고, 2000년대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혼전 순결을 강조했던 성교육 정책의 결과물이라는 재미있는 서구의 견해도 있다.

성의학의 입장에서 ‘트와일라잇’의 두 연인을 보면 남녀 사이엔 금기가 애절한 감정을 고조시킴을 알 수 있다. 실제 성치료기법인 성감초점훈련의 기본 원칙도 그러하다. 성감초점훈련의 시작단계에서는 삽입을 금지하고 애무로 온몸의 감각 자체에 집중해 즐거움을 찾는 훈련을 한다. 불만족스러운 성관계로 흥미를 잃은 커플은 오히려 성관계의 금지와 감각몰입의 단계적 접근을 반복하면, 결국 금지된 성관계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때로는 삽입 성행위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채 전희에 더 집중하는 것이 매너리즘에 빠진 부부 관계에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다. 또한 상대에 대한 감정도 더 강하게 불러일으킬 수 있다. 당연시되던 것을 금지시키니 오히려 이를 갈망하게 되는 이치다.

‘트와일라잇’의 벨라와 에드워드도 그랬고, 로미오와 줄리엣도 그랬다. 연애 소설과 영화에서 남녀 주인공은 절대로 쉽게 맺어지지 못해 독자와 관객을 애타게 만든다. 그것이 바로 절제와 금기의 미학이며, 부부 사이에도 가끔 쓸 수 있는 장치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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