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Special Report] 취향과 과시 사이 남자의 시계, 남자의 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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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는 우주를 담고 있다. 시계 바늘이 원을 따라 돌고 또 도는 것은 지구의 움직임을 따른다. 별의 움직임도 그 안에 있다. 우주의 운행에 따른 순환이 리듬을 만들고 그 리듬에 금을 새겨 시계를 만든다. 그래서 인간이 만든 가장 오래된 발명품 중 하나인 시계의 첫 번째 형태가 햇빛과 그림자를 이용해 만든 해시계였다.

우주의 움직임을 들고 다니는 호사를 맛본다는 점에서 스프링을 동력으로 움직이는 시계가 발명되고 그것을 목에 매고 다닐 수 있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시계를 간편하게 손목에 차고 다닐 수 있게 된 것은 20세기 초엽. 이때 손목시계는 주로 여성들의 전유물이었다.

1904년, 브라질의 비행사 알베르토 산토스-듀몽이 친구인 루이 카르티에에게 손목시계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양손으로 조종간을 잡고 시간을 보고 싶었다. 카르티에는 시계 명인 에드몬드 예거와 함께 산토스-듀몽을 위한 손목시계를 만들었다. 이 손목시계는 1911년부터 시판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손목시계가 남성들 사이에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양손에 장비와 무기를 들어야 했던 군인들에게 회중시계는 불편했다. 전쟁이 끝나고 나니 대세는 손목시계가 장악했다.

시계가 도처에 널려 있고 휴대전화에도 시계가 표시되는 요즈음, 손목시계는 더 이상 실용적인 아이템이 아니다. 그런데도 올 들어 여러 백화점과 시계 점포에서 남성 손목시계의 매출이 크게 올랐다. 1억원이 넘는 시계들도 마찬가지. 불황도 비켜가는 손목시계 열풍은 무슨 까닭인가? 이제 손목시계는 단순히 시간을 알려주는 기계가 아니라 착용한 사람의 취향과 인격을 드러내는 상징이 되었다.

어쩌면 이제 남성들의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손목시계는 극락조의 긴꼬리와 비슷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남태평양에 분포하는 이 새의 꼬리는 비정상적으로 길다. 진화생물학자들이 수컷들의 생식 성공률을 측정했다. 결과는 꼬리의 길이와 성공률이 비례한다는 것. 이 실험에 대한 해석은 비용이 많이 드는 화려한 꼬리는 잘난 놈만이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암컷이 알아본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행동도 비슷하다.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을 때 자동차, 휴대전화, 손목시계와 같이 남들에게 보이는 물건에 대한 소비가 증가한다는 것이 실험적으로 증명되었다. 이때 화장실 용품이나 가정상비약처럼 눈에 띄지 않는 물건에 대한 지출은 감소한다.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의 취향과 이미지를 바꾸어 놓으려는 영부인 부루니의 첫 번째 선택은 손목시계였다. 부루니는 결혼예물로 가죽끈의 파텍 필립을 선택했는데, 이것이 두터운 금장 롤렉스를 애용하던 사르코지의 이미지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그가 사교의 범위를 연예인에서 영화감독이나 소설가들로 옮긴 것이나 운동에 몰두하는 것들을 압도하는 효과를 손목시계로 얻었다. 이성뿐만 아니라 대중에게도 손목시계는 주인의 품격과 능력을 웅변한다. 노리는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 신중하게 손목시계를 골라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글 주일우 ‘문지문화원 사이’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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