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설] 600.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제13장 희망캐기 35

그녀가 돌아왔다는 소문이 위판장 근처에 퍼진 것이 분명했다. 눈두덩이 벌겋게 상기된 묵호댁은 그들이 몰려온 것이 개운치 않았으나, 승희가 술청으로 나서서 식탁을 훔쳐 주었다.

수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듣기에 거북한 농담이 겨끔내기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한철규라는 놈팽이를 따라 전국의 장터를 집 나간 똥개처럼 쏘다니고 있다더니 언제 작파하고 돌아왔느냐는 거북한 농담까지 거침없었으나 그녀는 가타부타 응대는 않고 시종 웃는 얼굴이었다.

그들의 희롱 따위는 한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제서야 승희는 가게 창문에 쓰여 있던 식단들이 변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활어들로 조리된다는 식단들은 간 곳 없고, 국수나 라면류의 식단들로 바꿔져 있었다. 포구의 경기가 바닥권을 헤매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불경기의 징후들은 주문진으로 달려오던 길에서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해질 녘에 용대리의 황태덕장을 지나올 적이었다.

지금 한창 명태들이 걸려 있어야 할 덕장에 난데없는 오징어들이 하얗게 걸려 겨울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진풍경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오징어는 난류성 어류이고 명태는 한류성 어류였다. 명태가 잡히든 오징어가 잡히든 바다에서 푸짐하게 건져 올릴 것이 있다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가질 수 있겠지만, 그런 생태계의 혼란은 어민들의 생활기반을 뒤흔들어 놓는 혼돈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전혀 반가운 현상이 아니었다.

명태가 잡혀야 할 시절에는 명태가 잡혀야 하고 오징어는 또한 그 시절에 맞춰 잡혀야 어민들의 가계에 주름살이 지지 않는 법이었다.

제주도와 흑산도 사이의 해역에는 차가운 연안수와 따뜻한 오해수가 서로 만나면서 수온전선이 형성되었고, 그래서 갈고(작은 고등어)와 삼치와 방어들이 몰려들어 그 해역은 물 반, 고기 반이란 소문이 주문진 포구에까지 파다하였다.

그러나 이 또한 겨울인데도 수온이 내려가지 않고 있는 이상징후에서 얻는 의미심장한 소득일 뿐이었다. 그런 이상징후를 2년째 내리 겪고 있는 포구는 그토록 걸찍했던 익살과 북새통이 밀려나고, 그 자리를 어느새 헐뜯는 비아냥거림과 시름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가난뱅이들의 상징이 되어버린 라면으로 당장의 허기는 모면해 갈지 모르겠지만, 라면으로 주린배를 달래는 자식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시름이었다.

소주 두 병에 라면 한 냄비를 식탁에 올려 놓은 낯 익은 어부들은 그래서 빈 창자가 얼큰해질 때까지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 식탁을 차지하고 있는 어부들 중에 한 사람은 전쟁도 겪지 않은 이산가족 신세를 일년째 겪고 있었다. 남편과 아내와 자식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자신도 시큼한 비릿내가 일년 내내 가시지 않는 뒷골목 여인숙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가고 있었다.

승희가 가게를 꾸려 가고 있었을 땐, 변씨 집 이웃에서 전셋집을 지키고 살았던 멀쩡한 어부였다. 가게를 묵호댁에 맡기고 떠나갈 때와 돌아왔을 때도 울적하고 스산했던 포구의 경기는 달라진 게 없었다.

이토록 협소하고 보잘것없는 작은 식당에서도 가슴 속까지 썰렁한 포구의 시름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승희에게 던지던 진한 농담도 그래서 금방 시들해져 버렸다.

그러나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수월찮게 벌었다는 소문은 바람 인편에 간간이 들었지만, 정말 뭉칫돈 챙긴 건가?" "집에 도둑 들까봐 함부로 말 못해요. " "뒤통수 친다더니…. 돈 벌었다는 말 한번 맵짜게 둘러치는구만. "

"옷은 배꼽이나 가릴 만하면 되고, 하루 세끼 밥 먹고 있으면 됐지, 내가 돈을 벌었으면 얼마나 벌었겠어요. 그나마 지금은 내 수중에 있지도 않아요. "

"누구 수중에 있는데?" "어느 날도둑놈이 챙겨 두고 있는데, 패거리들 모아서 그 놈 찾아가고 있는 중이에요. " "장돌뱅이 생활하더니 입정도 사나워졌구만. 옛날 승희는 간 곳 없군 그랴. "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