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숙아 매년 수천명 죽거나 심한 후유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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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땐 비록 940g이었지만 141일 동안 1.7㎏까지 잘 크던 아이였어요. 그런데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한 채 하늘로 보냈으니…."

지난 4월 임신 27주 만에 첫 아이를 출산한 박혜령(40.경북 양산)씨는 5개월도 못 돼 아이를 잃었다. 합병증에 의한 급성 호흡장애 때문이었다. 생업도 거의 포기하고 아이 치료에 매달렸던 박씨의 남편은 사실상 폐인이 됐다. 위생 관리 등 병원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박씨는 병원비가 밀려 진작 다른 병원으로 데려가지 못한 것을 자책하고 있다.

여성의 첫 출산 연령이 늦어지고 환경 오염이 심각해지면서 미숙아 출산이 늘고 있다. 미숙아란 임신 37주 미만에 태어난 조산아와 2.5㎏ 미만의 저체중 출생아를 말한다.

그러나 과도한 치료비 부담과 신생아 중환자실 부족으로 적정 치료를 못 받고 심각한 후유증을 안게 되거나 사망하는 사례가 많다. 미숙아후원단체인 '미숙아사랑'측에 아이 치료비나 장애 문제로 상담이나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하루 평균 5~10명에 이른다.

◆늘고 있는 미숙아 출산=최근 통계청이 내놓은 '2003년 출생.사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총 출생아 수는 30여년 만의 최저치인 49만3471명. 10년 전에 비해 22만5000여명이나 줄었다. 그러나 미숙아는 10년 전보다 오히려 1300명이나 늘어난 1만9898명이었다. 100명 중 4명꼴이다. 1.5㎏ 미만의 극소미숙아 출생률은 10년 동안 세배로 증가했다.

삼성제일병원 소아과의 이연경 교수는 "여성의 첫 출산 연령이 10대 초반이나 30대 후반 이후로 양극화하고 인공수정 등에 의한 쌍둥이 임신이 늘어난 것도 큰 원인"이라며 "환경 오염과 스트레스 요인 증가 등으로 미숙아를 낳을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지적했다.

다행히 의료 기술의 발달로 미숙아 생존율은 크게 향상됐다. 경희의료원의 배종우 교수는 "극소미숙아의 사망률은 1960년대 초 68%에서 2001년엔 11%로 크게 줄어 '생존한계'로 여겼던 500g대의 미숙아도 2003년 현재 15% 정도 살린다"고 말했다. 미숙아의 90% 정도는 치료만 제대로 받으면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엄청난 치료비 부담=그러나 치료비 부담이 만만치 않다. '미숙아사랑'의 김새한 대표는 "저소득층의 경우 가정 파탄과 아이의 생명 중 양자택일을 강요당해 한해에도 수천명의 생명이 '포기'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이 최근 4년간 1㎏ 미만으로 태어나 무사히 퇴원한 69명을 분석한 결과 3개월 동안 평균 947만원의 진료비(본인 부담금 기준)를 쓴 것으로 나타났다. 저체중일수록 치료비와 입원기간이 느는 데다 주사 바늘과 항생제 등 따로 지불하는 돈을 합하면 수천만원이 들기도 한다.

정부는 올해 모자보건관리비로 25억여원을 책정, 저소득층 미숙아 1인당 최고 300만원까지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대상이 전체 미숙아의 3%에 불과한 데다 극소미숙아의 치료비에는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영국.일본 등에선 치료비 전액을 국가가 부담한다.

병원들이 투자를 기피해 일부 대학병원이나 전문병원을 제외하곤 신생아 중환자실(NICU)의 시설이 낙후된 것도 문제다. NICU가 있는 병원도 전국 87곳에 불과하다. 아산병원의 김애란 교수는 "인큐베이터만 갖추면 되는 것이 아니라 수액을 주입하더라도 멸균.미세량 조절 등이 가능한 기계를 써야 하기 때문에 첨단 시설의 NICU는 침상 한개에 1억5000만원 이상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책은 있나=보건복지부는 내년 미숙아 지원 예산을 두배로 늘리고 체중별로 차등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삼성제일병원의 신손문 교수는 "전국적인 실태를 정확히 파악해 미숙아 상태에 따라 적당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일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열린우리당 장복심 의원은 "저출산 시대에 정부가 출산장려책을 추진하면서 정작 이미 태어난 조산아에 대한 지원을 게을리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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