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보이가 웃으면 호텔 실적이 좋아지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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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서정호 회장은 “앰배서더 브랜드를 키워 현재 9개인 호텔 체인을 2015년까지 20개로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1955년 여관업으로 시작한 앰배서더호텔그룹은 호텔 부지 개발부터 운영, 시설관리까지 호텔 관련 사업의 수직 계열화를 이룬 토종 기업이다.

서울 중구 장충동에 있는 그랜드 앰배서더호텔. 이 호텔이 지난 7월 ‘소피텔 앰배서더’에서 ‘그랜드 앰배서더’로 이름을 바꿨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직 많지 않다. 더욱이 이 호텔이 1955년 10월, 19개 객실 규모의 ‘금수장 호텔’로 출발해 오늘의 모습을 지니게 됐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 여기서 한걸음 더. 앰배서더가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노보텔 앰배서더 독산·이비스 앰배서더 서울 등 4개의 호텔을 직영하고, 수원·창원·대구 등에 5개의 프랜차이즈 호텔을 위탁 경영하고 있으며, 호텔 시설관리 회사인 의종개발을 두고 있는 토종 호텔그룹이란 것은 일부 호텔업계 종사자 아니면 모를 듯싶다. 이렇듯 조용히 호텔사업을 키워온 서정호(56) 앰배서더호텔그룹 회장을 지난달 29일 그랜드 앰배서더 호텔 14층 비즈니스센터에서 만났다. “왜 회장실이 아닌 곳에서 인터뷰를 하느냐”는 첫 질문에 서 회장은 “워낙 좁고 볼품 없어 남들에게 보여주기 민망해서”라며 털털 웃었다. 가장 좋은 자리는 고객에게 돌린다는 호텔업의 원칙 그대로다. 그는 출퇴근할 때 직원들이 고객이 아닌 회장에게 신경 쓰는 것이 불편해 호텔 정문이 아닌 뒷문을 이용한다. 앰배서더는 총 2700여 개 객실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해 직영 호텔 4곳에서만 1100억원대 매출을 올렸다.

-지난 7월 장충동 호텔 이름을 ‘그랜드 앰배서더’로 바꿨는데 무슨 사연이 있나.
“소피텔은 세계 5대 호텔 그룹 중 하나인 프랑스 아코르(ACCOR)의 브랜드 가운데 하나다. 앰배서더는 아코르와 87년부터 제휴관계를 이어오고 있는데 마침 소피텔 브랜드 계약이 만료돼 우리만의 정체성을 살리고 싶어 이름을 바꿨다. 우리는 65년부터 사용한 ‘앰배서더’라는 토종 브랜드를 지켜왔다. 국내 호텔 업계에선 보기 드문 일이다. 메리어트면 메리어트, 힐튼이면 힐튼이지 로컬 브랜드를 해외 유명 브랜드와 병행해서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브랜드를 공유한다는 것은 사실 심장을 나눠 갖는 것과 마찬가지다. 소피텔 브랜드 계약이 만료되면서 이제는 독자 브랜드를 쓸 타이밍이구나 싶었다. 아코르 측도 거절하지 않았다. 같은 취지에서 지난해 1월엔 새 기업 이미지(CI)도 선포했다.”

그렇다고 그랜드 앰배서더가 아코르와 아예 인연을 끊은 것은 아니다. 이 호텔의 풀 네임은 ‘그랜드 앰배서더 서울 어소시에이티드 위드 풀만’. 역시 아코르의 한 브랜드인 풀만과의 프랜차이즈 계약 관계는 살렸다. 앰배서더는 아코르의 노보텔과 이비스 브랜드를 쓰고 있기도 하다.

-지난해에만 대구·수원·창원 등 세 곳에 호텔을 열었다.
“정확히는 우리가 경영을 맡은 곳이다. 실제 소유주는 다르다. 이제 호텔은 서비스 지식 노하우를 파는 기업으로 진화했다. 특히 우리처럼 독자적으로 호텔 사업을 하는 회사는 대기업에 비해 직접 투자할 여력이 적다. 고유 브랜드를 키워서 그 브랜드를 확장하는 것이 현명하다. 서울 네 곳을 빼고는 모두 이렇게 경영 계약을 했다. 호텔 개발·건축, 시설관리 등을 전문으로 하는 의종개발이라는 회사도 있다. 국내에서 호텔 비즈니스의 수직 계열화를 이룬 유일한 회사가 앰배서더다.”

-글로벌 경제위기에 신종 플루까지 겹쳐 요즘 경영 사정이 어렵지 않나.
“질병·테러·이상기온 등이 사업에 영향을 미친다. 세계가 한 울타리가 되면서 겪는 역작용이다. 글로벌 위기가 닥치자 처음엔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러나 환율 효과를 크게 봤다. 특히 가을 들어 일본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서울 강북 쪽 호텔은 아주 실적이 좋다. 이비스 명동만 해도 8월부터는 방 구하기가 힘들 정도다. 그랜드 앰배서더도 마찬가지다. 이비스 명동은 지난해 대비 15% 이상, 그랜드 앰배서더는 7~8%쯤 매출이 늘었다. 하지만 일본 특수를 기대하기 힘든 노보텔 강남이나 노보텔 독산은 성적이 안 좋아 전체적으로 3~4% 정도 성장할 것 같다.”

서울 강남 노보텔 앰배서더 호텔.

-그랜드 앰배서더는 ㈜서한사, 노보텔 강남은 ㈜앰배서더즈, 노보텔 독산은 ㈜앰배텔, 이비스 서울은 ㈜앰배스텔 등 호텔을 운영하는 법인이 각각 다르다.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다. 호텔은 들어선 지역마다, 등급마다 성격이 다르다. 내가 근무하는 호텔은 적자가 나는데 회사 전체적으로 흑자라면 무슨 의미인가. 반대로 나는 흑자인데 회사가 적자라면 또 무슨 소용인가. 그래서 각자 손익을 내는 구조로 만든 것이다. 다만 인사·구매·전산 업무는 통합 관리한다. 충분히 시너지를 내고 있다.”

-하루 숙박요금 10만원대의 실속형 호텔 ‘이비스’ 브랜드를 선보여 주목받았다.
“첫 시작은 2003년 강남의 금싸라기 땅이라는 대치동에 세운 이비스 앰배서더 서울이다. 지금은 세 개가 됐다. 중증호흡기증후군(SARS), 신종 플루 같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줄곧 객실 판매율이 90%가 넘는다. 앰배서더가 이런 차별화한 상품을 선보인 것은 선대 회장 때부터다. 노보텔 강남은 지금도 틈새시장의 대명사로 불린다. 93년 강남에 개관하자마자 현재까지 평균 객실 판매율이 94%에 이른다. 비수기인 겨울을 빼면 봄부터 가을까지 방이 꽉 찬다는 뜻이다. 이런 독보적인 프로젝트가 이비스까지 이어진 것이다. (웃으면서) 덕분에 업계 선두주자 소리를 듣는다.”

-새 프로젝트의 성공 관건은.
“수요 파악과 타이밍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역시 서비스다. 모든 신규 프로젝트는 처음 계획한 것보다 서비스를 한 단계 높였다. 노보텔은 비즈니스호텔이지만 유럽의 고급 호텔이란 느낌을 받는다. 이비스는 객실 크기와 인테리어를 극도로 단순화하고 룸서비스도 없다. 그러나 밀도 있는 공간 디자인으로 편안한 휴식을 취하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

나중에 미국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서 회장은 71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부친의 뜻에 따라 호텔에서 일을 했다. 룸서비스도 하고 프런트에서 허드렛일도 거들었단다. 유학 시절엔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1년간 근무한 경험도 있다. “아버지께서 ‘무조건 최고급 프랑스 식당에서 경험을 쌓아라’고 지시했다. 당시만 해도 고급 호텔의 상징은 프랑스 식당이었다. ‘앙드레’라는 식당에서 일했다. 하루 9~10시간 서서 일하면서 양파 깎고 양념통 옮기는 일을 했다. 현장 감각을 익히는 데 엄청나게 도움이 됐다. 물론 양파수프도 제대로 만들 줄 안다(웃음).”

-부친에게 배운 경영 철학이 있다면.
“돌아가시는 날까지 한눈 팔지 않고 오직 호텔에만 매달린 분이다. 업(業)에 대한 식견이 탁월하셨다. 당신께서 직접 정한 ‘빠르고, 깨끗하고, 맛있고, 친절하게’라는 사훈은 지금 봐도 명쾌하게 호텔 사업을 설명한다.”

-사업을 하면서 어려웠을 때는.
“노보텔 강남을 완공(93년)할 무렵 노보텔 독산 호텔 공사를 시작했다. 겨울철이었는데 수도관 파열 사고가 나면서 지반이 무너졌다. 운이 좋아 사람은 다치지 않았지만 여기저기 불려 다니면서 꽤나 고생했다. 보상비만 30억원 넘게 들었다. 마침 아버님께서 타계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비빌 언덕’도 사라졌다. 최고경영자라는 자리가 의사결정을 한 번 잘못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정말 외로운 자리라는 것을 실감했다.”

-호텔 경영에서 가장 중요하게 따지는 지표는 무엇인가.
“숫자가 아니라 ‘직원 얼굴’이다. 벨보이나 프런트 등 현장 직원의 얼굴 표정, 태도, 말투에 호텔 성적표가 다 나와 있다.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문제가 있는 거다. 직원이 회사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고객을 만족시킬 수 없다. 사장이나 총지배인에게 ‘직원들이 원하는 것을 미리 파악해 원하기 전에 해주라’고 지시한다. 원하는 대로 못해줄 상황이라면 투명하게 설명하면 된다.”

-노사 관계는 어떤가.
“우리도 96년 노사분쟁을 겪은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원만하다. 지난해와 올해 노조가 임금 인상을 회사에 일임하더라. 이럴 때 굉장히 보람을 느낀다.”

-한국 관광산업의 경쟁력을 평가한다면.
“상대적으로 한국의 볼거리는 적다. 경복궁과 중국 베이징의 자금성을 비교해 봐라. 그러나 비즈니스 잠재력은 크다. 나름대로 지역적 차별화도 가능하다. 북유럽의 노르웨이에 가면 으레 스웨덴·핀란드를 들르듯 중국이나 일본을 찾으면 한국도 방문하게 되지 않겠나. 나중을 생각하면 북한의 관광 자원도 엄청난 메리트다. 다만 관광 인프라가 아쉽다. 가령 외국인이 렌터카 빌려서 한국 여행 다니기가 너무 불편하다.”

-한때 대기업들이 최고급 호텔을 경쟁적으로 지은 적이 있다. 앰배서더도 이런 유혹을 느낀 적은 없나.
“거꾸로 물어 보자. 최고의 기준이 무엇인가. 무조건 비싸고 화려한 것만이 최고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주 찾는 음식점 중에 평양면옥이라는 냉면집이 있다. 조촐하고 작은 식당이지만 정성을 다해 만든 음식을 내놓는다. 이런 순간 고객은 ‘최고’가 된다. 최고 브랜드, 최고 시설만이 호텔의 전부가 아니다. 이렇게 화려한 호텔은 별로 하고 싶지 않다. 이익 내기도 힘들다. 오히려 ‘특별함’을 통해 차별화를 추구하고 싶다.”

-대기업과 경쟁하는 데 한계가 있을 텐데.
“당연히 자본력이 달린다. 개인 사업자로 얼마나 (투자 자금을) 늘리겠나. 그래서 중요한 것이 인재다. 호텔은 자본집약적이면서 노동집약적인 산업이다. 초기 대규모 자금이 투입돼야 하지만 그렇다고 수익성이 뛰어난 것은 아니다. 앰배서더가 계속 성장하려면 좋은 브랜드가 돼야 하고, 이 브랜드를 확장해야 하는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이다. 인재 확보에 각별히 투자하고 있다. 우리는 좋은 인재에게 성장 기회를 제공한다. 이비스만 해도 세 곳 모두 앰배서더 출신이 ‘호텔의 꽃’이라고 불리는 총지배인으로 나가 있다.”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인재 말고 신경 쓰는 분야가 있다면.
“정보기술(IT)의 접목이다. 요즘은 객실도, 식당도 인터넷으로 예약하는 시대다. 유용한 마케팅 수단이기도 하다. 이 분야에 계속 투자할 방침이다. 마케팅IT팀을 별도로 만들었다.”

-요즘 고민거리는 무엇인가.
“환율 효과는 오래가지 않는다. 새로운 성장동력 찾기가 고민이다. 그러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 것이다. 내년엔 적어도 10개, 2015년까지 20개 체인망을 구축한다는 목표다. 다시 말하지만 브랜드 가치 키우는 게 중요하다.”

서 회장은 토종 호텔 브랜드를 지켜오는 데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러면서 “2006년엔 아코르와 ‘AA코리아호텔매니지먼트(AAK)’라는 합작사도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아코르와 앰배서더의 머리글자를 딴 AAK는 앰배서더가 운영하는 국내 9개 호텔의 경영과 마케팅을 맡고 있다. 그는 이 회사 지분 49%를 갖고 있다. “아코르가 로컬 파트너와 거의 대등하게 합작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덕분에 로열티 유출도 줄어들게 됐다. 전 세계에 4000개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세계 5대 호텔 브랜드가 우리의 실력을 신뢰해준 것이다.”

-해외 진출 계획은.
“국내에선 아코르와 제휴하고 있지만 해외는 독자적으로 나갈 수 있다. 미국 뉴욕 같은 곳에 비즈니스호텔을 인수하고 싶다. 다만 지금은 타이밍이 이른 감이 있다. 미국 기업들이 지금은 제로 금리 때문에 버티고 있지만 앞으로 1~2년 내 한계를 맞아 싼 매물이 나올 것으로 본다.”

-아예 다른 업종에 진출할 생각은.
“나는 호텔밖에 모른다. 호텔 연관사업 확장을 생각하고 있다. 면세점이나 웨딩, 식당 프랜차이즈 등에 관심 있다. 해외 진출도 같은 맥락에서 할 것이다.”

-다음 인터뷰할 분을 소개해 달라.
“덴마크계 다국적 펌프 회사인 그런포스펌프 한국지사를 20년째 경영하고 있는 이강호 사장을 추천한다. 육사 출신으로 한때 장군을 꿈꿨지만 지금은 고급 펌프 시장에서 돋보이는 실적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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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이강호 한국그런포스펌프 사장입니다.

만난 사람=차진용 산업에디터 정리=이상재 기자 sangja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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