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키워드] 9. 생태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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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생태권' 이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과 그를 둘러싼 환경의 유기적 관계를 강조하는 '생태' 개념과 그것을 지키는 게 인간의 생존을 위해 기본권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인권' 개념의 합성어다.

이는 '인권 개념의 오랜 기간에 걸친 발전 과정' 과 '인류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정도로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는 세기말적 현실' 을 동시에 반영한다.

따라서 이것은 21세기에 대한 강한 불안감과 함께 새로운 인간관.자연관.세계관의 모색을 함축한다.

인권이란 인간이기 때문에 갖는 권리를 말한다.

이것이 오늘날 전세계에 널리 적용돼야 할 국제법의 원리로 자리잡은 것은 1948년 국제연합이 '세계인권선언' 을 채택한 이후부터다.

인권 개념은 16~17세기 서구의 사회철학적 논의 과정에서 태어나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실정법으로 구체화됐다.

인권의 구체화와 보편화 과정은 아울러 그것이 확대되고 심화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애초에 그것은 생명.자유.저항권.소유권을 보장하는 시민적 권리였으나 19세기 들어 참정권과 같은 정치적 권리로 확대됐다.

이어 20세기에 들어서는 교육.노동.휴식.건강과 복지 등 한마디로 인간적 품위를 유지해 줄 수 있는 사회.경제.문화적 권리로 심화됐다.

이러한 변화는 산업사회의 등장과 그에 따른 계급적 갈등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개인의 운명에 대한 '사회적 책임' 이 당연한 것으로 간주됨에 따라 개인주의적 권리 개념은 오히려 약화됐다.

소유권이 인권의 범주에서 탈락하고 국가와 사회의 역할을 강조하는 공동체적 권리 개념이 등장한 것이다.

아울러 복지적 인권은 거대한 물적 기반과 사회적 비용을 요구해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만성적인 환경파괴를 불가피하게 했다.

생태권의 이념은 이러한 변화의 연장선에서 나타난다.

그것은 한편으로 환경파괴와 생태계의 교란이라는 후기 산업사회의 현실을, 다른 한편으로는 생물학적 실험이나 유전자 조작이 인간의 유전적 정체성을 뒤흔들 정도가 된 과학기술의 발전을 반영한다.

그리하여 21세기의 새로운 현실은 사회권을 확장시켜 환경권, 더 나아가 생태권을 생존권과 불가분한 요소로 만든다.

생태권은 환경운동과 인권운동의 결합이 낳은 것으로 환경보전을 위한 '소수자들' 의 권리,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절차적 권리와 '미시(微視)정치' , 그리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신의 유전적 구성에 대한 지식을 거부할 수 있는 '유전적 무지권(無知權)' 등의 문제를 새롭게 제기한다.

아울러 그것은 인간 유전체인 게놈에 관한 연구가 인간의 존엄성.자유.인권을 존중해 인종적 차이를 입증하기보다 인류의 보편성을 확인해 주길 바란다.

더 근본적으로는 인간과 자연의 유기적 관계를 강조하는 생태주의와 인간.동물의 상관성을 강조하는 진화론에 입각해 동물을 인간의 관점에서 보고 인간을 동물의 한 부류로 보는 새로운 자연관을 요청한다.

궁극적으로 생태권은 인간을 지구적 차원에서, 지구를 우주적 차원에서 보는 '온 생명' 의 우주론을 함축한다.

최갑수 (서울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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