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DJ만이 할 수 있는 결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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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새 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이 22일 앞으로 다가온다.

1천년간이라는 밀레니엄의 개념은 근본적으로 기독교적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이어서 이슬람 세계에선 바깥 세계의 밀레니엄 호들갑을 먼산 불구경하듯 여기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국제질서가 서구중심인 현실에서, 또 우리가 사용하는 태양력의 연대기적 의미에서도 새 천년대의 시작은 우리에게도 뭔가 새로운 기대와 희망을 갖고 대비해야겠다는 결의와 각오를 다지게 한다는 점에서 진취적으로 받아들여도 좋겠다.

그러나 올 한 해는 우리의 미래를 지극히 암울하고 무겁게 만들었다.

새로운 연대기의 시작을 대비하는 논의가 사회의 중심적 화두로 부상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것을 선도해야 할 정부와 정치권이 여러 의혹사건의 연루혐의와 소아적 쟁투로 시종했기 때문이다.

정치는 여야간 극한대립, 내각제 개헌추진 문제를 둘러싼 공동여당간의 암투와 그 파생물인 공동여당간 합당 여부에 대한 지루하고 짜증나는 선문답식 대화, 선거구제도의 개편을 핵심인 양 잘? 설정한 정치개혁의 지지부진 등으로 일관했다.

정부는 4월부터 터지기 시작한 고관집 털이 사건, 경기은행 퇴출 로비 사건, 고관부인 옷 로비 의혹사건, 파업유도 의혹 사건 등에 휘말려 중심을 잃고 21세기 우리가 추구해야 할 국가적 과제에 대한 논의를 사회의 중심의제로 끌어올리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정부와 정치가 행사하는 영향력이 압도적인 우리 사회의 현실을 감안할 때 정부의 선진화와 정치개혁이 21세기 벽두에서 가장 절박하고 절실한 과제라는 공감대는 이미 형성된 지 오래다.

그것을 주도해야 할 정부와 정치권이 여전히 숲을 바라보지 않고 엉뚱한 곳에서 헤매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예컨대 사법개혁의 경우 본질적인 문제는 법원과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확보해주는 것이 요체다.

그러나 정부는 사법시험제도의 개선에 더 무게?두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권력층이 검찰권 행사에 간여하지 않고 있다고 하지만 서경원(徐敬元)사건의 공작금 사용처에 대한 재수사과정은 그 점을 의심케 한다.

국정원이 국내정치에서 손을 뗐다고 하지만 전직 국정원장은 재임 중 국회의원 재선거와 관련한 보고를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의전비서관의 개인보고서라고 하지만 의전비서관 자체가 국정원 직원인데 이를 어떻게 사적 보고라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

국세청은 엄정한 세정집행만 할 뿐이라고 하지만 조세시효가 지난 것까지 들춰내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고 있다.

화합과 희망의 새 출발을 위해 추진하는 밀레니엄 사면에 정치부패와 금융신용 불량의 범법자들까지 포함시키려는 움직임은 깨끗한 정치의 구현과 신용사회 구축에 역행한다는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

여야는 지난 2년간 극한 대결만 일삼았다.

한쪽은 과거 반대편의 비리를 응징하겠다고 나섰고, 다른 한쪽은 그에 대응해 살아남아야겠다고 버티는 대치국면의 지속이었다.

'국민의 정부' 가 들어섬으로써 지역감정 문제가 수그러들 것으로 예측됐으나 오히려 더 악화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 원인은 정치보복과, 인사 등에 대한 일부 지역의 상대적 박탈감의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니까 여권이 소선거구제로는 안되겠다는 판단을 하고 정치개혁의 초점을 선거구제도 개정에 맞춘 것이 아닐까. 물론 그에는 전국정당화라는 대의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선거구제도 개정에 집착하는 것은 본말전도라 하겠다.

좋은 정치로 민심을 잡는 것이 총선거 승리의 본(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21세기를 대비해 정부와 정치권이 각기 최소한 이것 하나만이라도 결의하고 실천하는 가시적 조처를 취했으면 제의하고 싶다.

정부는 국정원.검찰청.경찰청.국세청 등 권력기관의 제자리 잡기를, 정치권은 정치의 보복 끊기를 다짐하고 실천하자고 - .

검찰의 중립성이 확보됐다면 야당이 자신의 비리를 캐는 검찰권 행사를 정치보복의 차원으로 호도할 수 없고, 국민도 검찰권 행사를 당연시할 것이다.

핵심 권력기관의 중립성이 확립되고 정권교체에 의한 여러 형태의 보복적 현상이 사라진다면 정치가 그런 일로 가파른 대결국면을 타지도 않을 것이며, 여야는 정책경쟁을 통한 대화와 타협이라는 상생(相生)의 정치를 펼칠 개연성이 그 만큼 커지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이 편안한 마음을 되찾아 지역성을 훨씬 누그러뜨릴 것이 아니겠는가.

옛 정권들 및 권력기관들로부터 박해받았던 김대중(金大中)대통령만이 그런 결단을 하고 실행해서 국가를 정상궤도로 올릴 수 있는 입장에 있다.

통일문화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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