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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은…] 중기·대기업 '기술혁신 상생'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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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얼마 전 일본 도쿄(東京) 오타(大田)구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여기에는 종업원이 10명도 되지 않는 6000여 개의 부품공장이 있다. 로봇.바이오 등 첨단산업에서부터 금형.프레스.금속 부문까지 없는 것이 없을 정도다. 발주를 받으면 최종납품까지 각각의 공장들이 공정을 분업해 나가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모든 공장이 나만의 독자적인 기술력을 가지면서 사회의 기술우대 분위기,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등을 토대로 세계적인 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같이 중소부품업계가 세계 최고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은 무엇보다 대.중소기업 간 상생의 협력관계에서 비롯됐다. 우리의 사정은 어떠한가. 대기업이 일방적으로 납품단가를 인하하고, 발주 취소나 중단을 해도 중소기업은 거래단절을 우려해 울며 겨자 먹기로 감수할 수밖에 없다. 원.부자재 구매 때 가격인상 요구는 즉시 수용할 수밖에 없으며 이에 따른 납품단가 인상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얼마 전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와의 모임에서 대기업에 부품을 공급하는 J사장은 "대기업의 글로벌 소싱 전략으로 발주량이 줄고, 조만간 그마저 끊기면 사업을 정리하든지 다른 방안을 강구해야 할 판"이라고 하소연한 일이 있다. 최근에는 환율 하락으로 주요 대기업들이 해외 아웃소싱 비율을 현재보다 세 배까지 높이는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런 형국에서 중소기업이 기술개발이나 투자를 늘려 나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 경제가 선진경제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기술혁신의 상생관계가 지속되어야 한다. 더욱이 완제품의 조립생산 능력이 평준화되면서 부품 소재를 중심으로 한 중소기업의 기술력이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좌우하고 있다.

정부도 2010년까지 핵심 부품 소재산업의 세계적 공급기지로 만들기 위해 중핵기업 300개를 육성한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중핵기업 육성도 중요하지만 그 하부구조를 형성하여 수많은 부품공급을 담당하고 있는 2차, 3차 수급 중소기업 육성도 그에 못지않다. 이를 위해 산업단지와 중소기업이 밀집해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중소기업이 언제든지 연구개발과 시험평가를 할 수 있도록 파일럿 플랜트 설치 등 현장 밀착형 인프라 구축을 확대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정부의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대.중소기업간 기술혁신을 위한 협력도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중소기업의 기술과 품질 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대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기술과제 선정 때부터 중소기업을 참여시키고 이를 공동으로 개발해 나간다면 대기업이 요구하는 기술과 품질 수준을 확보할 수 있고, 납품과정에서의 시행착오나 불확실성도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대기업의 일방적인 발주 취소나 변경으로 인한 경영악화를 미리 방지하기 위해 최소 3개월 전에는 이를 통보하도록 제도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중소기업의 70% 이상이 원자재가격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하지 못해 채산성 악화의 원인이 되고 있으므로 하도급 계약 시 에스컬레이션 조항을 추가해 계약금액을 조정하거나, 납품단가의 원활한 조정을 위한 원가계산센터의 설립도 검토해볼 만하다고 본다.

중소기업 간에도 상생관계가 필요하다. 국내 중소기업들이 자체 연구개발 투자에 적극 나서지 않을 경우 빠르게 추격해 오는 중국 등 외국 중소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가운데 중소기업들이 동종기업이나 대학과 힘을 합쳐 기술연구회를 결성하고, 첨단기술과 이색 아이디어 제품의 공동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중소기업이 뭉쳐 제품의 품질을 테스트하고, 공정을 개선하는 것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시작이면서 지향해야 할 전략이기도 하다. 따라서 기술혁신의 속도와 융합화의 흐름을 감안해 현재 2년인 연구과제의 개발기간과 지원한도를 늘려주고 사업예산도 보다 확대해 기술개발의 파급효과를 높여 나가야 할 것이다.

가격과 품질에 따라 전 세계 어디서나 부품을 조달하는 글로벌 소싱 추세는 불가피한 선택이라 하더라도 중소기업이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품질혁신을 통해 국제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대기업이 대.중소기업 간 기술혁신의 실질적인 상생관계를 구축하는 데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김용구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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