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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법 폐지 정면 비판] 대법 "통일전선 위험 직시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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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법원이 일부 정치권의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에 대해 반대 입장을 강력히 표명했다.

김승규 법무부 장관이 보안법 폐지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밝힌 데 이어 우리나라 최고 권위의 두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보안법 존치론에 힘을 싣는 판결을 잇따라 내놓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헌재.법무부가 여당 의원들이 주도하고 있는 보안법 폐지론에 한 목소리로 제동을 걸고 있는 형세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가 보안법 폐지를 권고하는 등 일부에서는 폐지론을 고수하고 있어 존치-폐지 양측의 공방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 사법부 결정을 둘러싼 논란=이번 판결문에는 보안법 폐지 움직임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가 담겨 있다. 보통 대법원 판결문은 기소된 사안의 사실관계를 밝힌 뒤 해당 법 조항에 근거해 유.무죄를 판시한다. 그러나 이번 판결문은 보안법 개폐 논란과 함께 폐지론자들의 주장을 일일이 나열한 뒤 그 내용을 반박하는 형태로 구성돼 있다.

구사된 표현들도 직설적이다. 재판부는 "보안법의 규범력을 소멸시키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며 정치권 등의 보안법 폐지론을 거론한 뒤 '일방적인 무장해제'는 안 된다고 못박았다.

특히 대법원은 현 사회.정치적 상황에 대한 우려도 표명했다. "오늘날 북한에 동조하는 세력이 늘어가고 통일전선의 형성이 우려되는 상황임을 직시할 때 체제 수호를 위해 허용과 관용에는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헌재도 지난달 26일 보안법을 형법으로 대체하자는 일부 주장과 관련, "평화시대를 기조로 한 형법은 우리가 처한 국가의 자기 안전.방어에는 다소 미흡하다"면서 "(보안법은) 형법상의 내란죄 등과 별도로 독자적 존재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헌재는 또 보도자료에서 "입법부가 헌재의 결정과 국민의 의사를 수렴, 입법 과정에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반면 폐지론자들은 보안법을 대표적인 '반민주 악법'으로 규정하고 "남북 화해 협력시대에 더 이상 존재할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 "보안법 제7조 문제 없다"=현재 보안법 폐지론자들은 국가보안법 제7조 5항(이적표현물 소지.배포 처벌)에 대해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만큼 위헌"이라며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대법원은 그러나 이번 판결에서 이 조항의 존속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객관적으로 볼 때 표현물의 내용이 반국가단체 활동에 동조하고, 이적행위가 될지 모른다는 미필적 인식이 있으면 처벌 대상"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이적표현물 배포.소지가 헌법 제37조(국가안전보장을 위해 자유와 권리 제한 가능)에 비춰볼 때 규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대법원이 입법정책에 대한 호.불호를 표현한 것은 정치적 영역을 침범, 3권분립의 원칙을 어긴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재식.문병주 기자

*** 판결 요지

① 북한이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인지 여부

북한이 50여년 전에 적화통일을 위해 무력 남침을 강행함으로써 민족적 재앙을 일으켰고, 그 이후 오늘날까지 크고 작은 수많은 도발과 위협을 계속해오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앞으로도 우리가 역사적으로 우월함이 증명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헌법 체제를 양보하고 북한이 주장하는 이념과 요구에 그대로 따라갈 수는 없다. 따라서 북한이 온갖 방법으로 우리의 체제를 전복시키고자 시도할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나라의 체제는 한번 무너지면 다시 회복할 수 없는 것이므로 한치의 허술함이나 안이한 판단을 허용할 수 없다. 남북한 사이에 교류와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고 해서 북한의 반국가단체성이 소멸하지 않는다. 따라서 북한의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보안법의 규범력이 상실됐다고 볼 수 없다.

②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소지.배포 처벌 여부

자유민주주의 아래에서 표현의 자유, 사상과 양심의 자유 등이 보장돼야 하므로 체제를 위협하는 표현 등의 자유까지 허용해 주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적 정당성을 제고하는 길이라는 주장이 있다. 또 우리 사회가 이미 상당히 성숙해 있어 그러한 표현이나 이에 따른 행동을 능히 소화해낼 수 있으므로 이를 널리 포용하고 관용을 베푸는 것이 사회를 더욱 발전시킨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러나 아무리 자유민주주의 사회라 하더라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자유까지 허용함으로써 스스로를 붕괴시켜 자유와 인권을 모두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오늘날 북한에 동조하는 세력이 늘어가고 통일전선 형성이 우려되는 상황임을 직시할 때 체제 수호를 위해 허용과 관용에는 한계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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