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cover story] 언제나 신혼처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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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야,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자. 우리끼리, 평~생."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는 낳지 않는다는 ‘딩크족’, 이태훈.설희정씨 부부. 출산은 선택일 뿐 필수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나흘간을 트레킹해 찾아간 히말라야 3859m 고지 '에베레스트 뷰'호텔에서 부인과 함께 마시는 카푸치노 한잔. 바람을 품은 햇살에 서서히 안개가 걷히는 임실 옥정호에서 부부가 함께 맞는 새벽. 퇴근 후 단골 삼겹살집에서 남편과 기울이는 소주잔….

올해로 결혼 6년째를 맞은 이태훈(35.여행작가).설희정(31.여.스튜어디스)씨 부부. 연애 기간 3년을 합하면 이젠 서로 '알 만큼 알' 사이지만 기분만은 여전히 신혼이다. 매년 한번씩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찾아가기로 해 지난해엔 그리스 수니온곶을, 올해는 스위스 인터라켄을 다녀왔다. 설씨는 비행이 없는 날엔 취재 가는 남편을 따라 전국을 함께 다닌다. 평소 주변의 소문난 맛집을 찾아다니며 데이트를 즐기는 건 기본이다.

이씨는 "아이가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한다. '맞벌이를 하며 아이는 갖지 않는다'는 이씨 부부, 바로 전형적인 '딩크(DINK:Double Income No Kids)족'이다.

대학 때 유럽 배낭여행에서 돌아오던 비행기에서 설씨를 만나 사귀기 시작한 이씨는 이미 결혼 전 애를 낳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여행을 평생 업으로 삼을 그이기에 육아의 짐을 아내에게만 맡기는 게 무책임하게 느껴졌던 것.

아내를 향한 사랑이 분산되는 것도 원치 않았다. 평소 '사랑은 n분의 1'이란 게 지론인지라 아무래도 아이가 생기면 자신의 관심이 나눠질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설씨도 이런 생각에 흔쾌히 동의했다. 그녀 역시 직업 특성상 일과 아이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지금도 애 키우랴, 승진을 위해 집에서 리포트 쓰랴, 영어공부하랴 정신 없는 동료들을 보면 그 결정이 옳았음을 확신한다고 했다.

"출산율 최저시대라고 난리인데…." 조심스레 말을 꺼내자 금세 설씨가 정색을 한다. "물론 주변에선 이기적이라고 수군대지만 맞벌이 부부가 마음놓고 육아할 시스템도 없는 상태에서 애를 낳고 싶진 않아요."

이씨 역시 "아무 대책 없이 덜컥 애를 낳아 부모님께 또다시 신세지는 게 오히려 이기적인 것 아니냐"며 맞장구를 친다.

가끔 아기들을 보면 귀엽다는 생각이 들지만 앞으로도 결코 계획을 수정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만큼 아이로 인해 포기해야 할 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란다.

"한 선배가 '나중에 권태기가 찾아오면 아이가 있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반대로 권태기 없이 둘이 평생 잘 살 수 있다면 아이는 필요없단 얘기 아닌가요? 우리 부부는 그렇게, 행복하게 살 겁니다."

글=김필규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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