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日산업 '뼈대교정' 나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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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일본 경제 지도가 변하고 있다. 장기불황과 개혁조치 지연에 따른 시행착오를 경험한 일본 정부와 산업계가 '제2의 도약' 을 위해 과감히 '헌 옷' 을 벗어던지고 있는 것이다. 단일업종 치중, 그룹내 계열사간의 강한 결속력을 축으로 했던 그동안의 산업구도는 이제 옛 이야기가 됐다. 닛산 등 주요 기업이 외자계에 과감히 경영권을 넘기는가 하면 다른 재벌그룹에 속한 금융기관간에 합병이 이뤄지는 등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런 모습이 같은 시기에 격심한 기업구조조정을 하고 있는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적지 않다.

◇ 산업재편 가속화〓가장 활발한 재편은 금융기관들의 통합바람이다. 다이이치간교(第一勸業).후지(富士).니혼고교(日本興業)은행의 합병으로 세계 1위의 은행이 탄생한 데 이어 경쟁 재벌인 스미토모(住友)그룹의 스미토모은행과 미쓰이(三井)그룹의 사쿠라은행도 합쳐 세계 2위가 됐다. 제2금융권도 예외는 아니다.

금융개혁에 이어 시작된 것이 산업 활성화. 정부는 지난 10월 '선택과 집중' 을 키워드로 '산업활력재생(再生)특별조치법' 을 마련했다. 사업 재구축을 지원하기 위해 지주회사 설립을 자유화했고 기업조직 변경을 위해 주식교환 이전제도.회사분할제도도 도입했다. 또 스톡옵션제를 도입하고 창업자 대상 자금지원도 강화했다.

이에 발맞춰 닛산이 프랑스 르노에 경영권을 양도한 것을 비롯, 재팬텔레콤은 미국의 AT&T.영국의 브리티시 텔레콤(BT)과 자본제휴를 맺었다.

도요타(豊田)자동차도 내년까지 지주회사를 설립, 방만한 조직을 정리해 일반 승용차.경차.트럭부문 3개사로 분할키로 했다. 또 히타치(日立)와 도시바(東芝)도 반도체 부문을 통합키로 했고 종합상사인 마루베니(丸紅)도 조만간 지주회사 체제를 도입해 약 1백개의 사업장을 식음료.섬유 등 8개 자회사로 분리할 계획이다. 소니도 단순 전자회사에서 탈피, 디지털 영상사업 등 첨단 미래산업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 국내외 영향 및 시사점〓 '개혁의 가닥을 잡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입한다. 그러나 일단 가닥이 잡히면 스피드를 높인다. 그리고 법과 제도를 통해 철저하게 개혁한다' . 일본 경제계가 '잃어버린 10년' 을 되찾기 위해 내건 슬로건이다.

일본 산업재편에 있어 정부는 기업이 제시한 프로그램에 세제.금융 등으로 지원해줄 뿐이다. 기업개혁의 필요성과 방식.결과는 전적으로 시장판단에 맡긴다. 2002년을 목표로 4~5년간에 걸친 장기개혁 프로세스를 진행시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일본 산업계 전반에 걸친 재편바람은 일 기업들의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분업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며 "한국 기업들이 일 기업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 이라고 분석했다.

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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