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커스] 멀고도 힘든 한반도 평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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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또 한차례 떠들썩하게 홍역을 치르고 지금은 평상으로 돌아간 듯 싶은 것이 바로 북한의 미사일 문제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휴지기에 들어가 있을 뿐 언제 새로운 사이클로 다시 우리에게 긴장의 순간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한반도 평화의 기반 다지기는 그래서 쉴 새가 없는 작업이다.

며칠 전 끝난 북.미회담은 구체적 성과가 없어 보이나 또한 실패는 아닌 채로 다음을 기약하고 있다. 4자회담은 또 조만간 열릴 것이나 한반도 평화체제와 군축문제에 대한 획기적 합의는 아직 시기상조로 보인다.

일본은 곧 무라야마 전총리를 단장으로 한 대표단을 북한에 파견해 일.북 수교협상의 정지작업에 들어갈 것이다. 한편으로 일본과 러시아를 포함하는 6자회담이 제기되는가 하면 '아세안+한.중.일' 의 다자간 회담도 조만간 열릴 예정이다.

그야말로 한반도 안보의 국제화시대가 만개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안보의 비전과 함정의 양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남북의 현상황을 어떻게든 변화시켜 한반도 평화를 가져오려는 노력이라 보면 이것은 틀림없이 비전이나 그 변화가 가져올 수 있는 불확실성과 한국 안보의 본질 훼손 가능성에선 함정이 된다.

한반도 평화의 모든 문제는 결국 남북이 진정한 평화체제를 수립할 수 있느냐의 여부로 수렴된다. 한반도 안보의 국제화도 결국 그것에 기여할 수 있느냐로 그 바람직함이 판단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것은 비전보다 멍에가 될 수 있기에 우려하는 것이다.

사실상 냉전말기 한국 안보의 화두는 한미동맹에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하는 한국 안보의 한국화였다. 탈냉전기에 들어서 중국과 러시아와의 외교관계 수립, 그리고 다자주의를 강조하는 다변화와 다원화를 추구했다.

가장 중요한 북한과의 관계는 남북기본합의서의 서명이 백미였다. 그러나 그것은 곧바로 사문화(死文化)됐을 뿐 아니라 그 후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 등으로 한반도 평화는 오히려 더욱 요원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반도 안보의 국제화는 이러한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심화된 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 당사자가 한반도 문제를 해결한다는 오랜 구도가 무너진 것이다.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네바합의, 그리고 4자회담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남북대화 우선원칙이 후퇴했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을 수용하면 한반도 평화체제의 수립도 결국 한반도 안보의 국제화 틀 속에서 해야 하지 않느냐는 판단이 들 수 있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남북 당사자 원칙은 오히려 앞으로도 지켜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남북이 서명하는 평화체제만이 한반도 평화에 진정한 의미가 있다.

여기에는 대안이 있을 수 없다. 다만 과정의 다원화는 큰 문제가 없다. 즉 남북 당사자 해결이라는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차원의 대화와 협상 과정이 그것이다.

4자회담도 말하자면 그와 같은 과정의 일환이다. 한반도 안보의 국제화 틀도 이 과정의 일부일 때 가치가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수립을 위해 북.미간, 그리고 남북간의 동시 협정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북.미가 관계수립을 위해 협상하는 것과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북.미협정은 전혀 별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주변국 보장론도 문제다. 궁극적으로 남북간의 평화를 남북 이외에는 아무도 '보장' 해 줄 수 없다. '2+2방식' 이나 '4 - 2방식' 등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나 레토릭의 성격이 있다.

미.중이 보장했다고 한들 북한이 진정으로 평화 의도가 없는 한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현재도 못하는 강요나 제재를 미래에 할 방법이 없다. 따라서 평화체제와 동시에 남북간 신뢰구축의 구현만이 실질적 보장이 된다.

문제는 현실이 그와 같지 않다는 데 있다. 한반도 안보의 국제화는 너무 멀리 나갔고, 북한은 미국과의 큰 거래를 바라며 그 쪽으로만 목을 빼고 앉아 있다. 이 모든 국면을 이끌 한국의 고삐 쥔 손은 그렇게 힘있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다만 명심할 것은 남북관계의 획기적 변화 모색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자칫 우리 스스로 만든 트로이 목마가 될 수 있다. 한반도 평화를 이뤄내는 것이 지난한 작업임을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현인택<고려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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