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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제주 들꽃의 매력에 빠졌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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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어느 겨울날 한라산에서 흰눈 속에 피어난 산수국이 저녁 햇살에 투영돼 빛나는 것을 봤어요. 늘 중심부의 화려한 삶만을 추구하던 내 삶이 부질없게 느껴지더군요. 그때부터 작은 꽃, 못생긴 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제주도의 동쪽 끝마을인 북제주군 구좌읍 종달리에서 목회 활동을 하고 있는 김민수(43)목사는 야생화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 감동의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는 "그냥 지나쳐버리곤 했던 산자락과 동네 어귀의 풀섶에서 몇 해를 피고 지던 그 꽃들이 내게로 다가왔다"고 '그날'을 기억한다.

그때부터 그는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제주도내 산야를 훑고 다녔다. 그렇게 해서 모은 400여종의 야생화 자료 중 50여종을 추려 최근 '내게로 다가온 꽃들'(한얼미디어)이란 책을 펴냈다. 새끼노루귀.현호색.보춘화.산자고.괭이밥.반디지치.매발톱.꽃기린.며느리밑씻개.방기지똥 등 이름조차 생소한 야생화들이 꽃에 얽힌 전설과 꽃말, 꽃과 관련된 문학 이야기가 사진과 함께 소개돼 있다.

김 목사의 야생화 사랑은 2002년 농어촌 교회를 찾아 제주도로 내려오면서 시작됐다. 서울에서 태어나 한신대 신학부와 기독교육과(대학원)를 나온 뒤 1995년 목사 안수를 받고 서울의 잘 나가던 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하던 중이었다.

"도시 생활이 삭막하게 느껴진 데다 시골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접을 수 없어 제주행을 결심했어요. 다들 큰 교회.도시에 있는 교회를 찾아나서는데 왜 거꾸로 가려 하느냐고 주위에서 말리더군요. 아내와 세 아이를 설득해 결국 뜻을 이뤘지요."

그가 정착한 곳은 450가구(인구 1000여명)가 살고 있는 종달리의 종달교회. 제주도 내에서도 경제.교육여건이 척박한 곳으로 꼽힌다. 교회에서 주는 월 100만원으로 네 식구가 살아야 하는 빠듯한 살림살이와 아이들의 교육문제를 생각하면 사실 걱정도 없지 않다.

하지만 "시골 사람들의 넉넉한 인심과 평생 친구가 돼줄 야생화가 있어 서울 생활에 비길 수 없다"며 김 목사는 환하게 웃음지었다.

글=이정민 기자
사진=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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