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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해리 포터' 신드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프랑스의 시인이자 작가인 샤를 페로가 '신데렐라' 의 이야기를 문학작품으로 만든 것은 1697년이었다. 교훈적인 이야기 또는 짧은 이야기' 라는 제목의 동화집에 수록돼 있는 8편 가운데 '상드리용' 이라는 제목의 동화가 바로 신데렐라의 이야기다. '재투성이' 라는 뜻이다.

물론 페로의 창작이 아니고 예부터 유럽 일대에 전해 내려오는 구전설화(口傳說話)를 작품화한 것이다. 독일의 그림 형제도 똑같은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들어냈고, 우리나라에도 '콩쥐 팥쥐' 의 구전설화가 있다.

한데 페로의 '상드리용' 에 관해서는 재미있는 뒷이야기가 전해진다. 본래 프랑스의 구전설화에서는 신데렐라가 '유리구두' 를 신은 게 아니라 '털가죽 신' 을 신은 것으로 돼 있었다는 점이다. 고대 프랑스어는 털가죽을 'vair' 라 표기했는데 14세기 이후 이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으며, 페로가 작품을 쓰는 과정에서 이것을 '유리(verre)' 의 잘못인 줄 알고 그렇게 썼다는 것이다.

만약 신데렐라의 신발이 유리구두가 아닌 털가죽 신이었다면 어땠을까. 작품의 내용도 조금 달라졌을 것이고, 무엇보다 그 환상적인 분위기는 훨씬 덜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신데렐라 콤플렉스' 라는 말이 나왔을지조차 의문이다. 털가죽 신은 동화 속의 여주인공과 어울리지 않지만 유리구두는 동화의 필수적 요소인 환상적 우의성(寓意性)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작가의 본의든 아니든 유리구두는 바로 신데렐라의 상징이 돼버린 것이다.

유리구두는 곧 환상의 매개체다. 어린이들이 그런 환상을 좋아하는 것은 그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속성 때문이다. 그래서 동화는 어린이들을 사회의 정신구조로 유도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교육적 효과로 본다. 어린이들뿐만 아니다. '모든 문학은 동화를 닮아야 한다' 는 러시아 작가 레오 톨스토이의 주장은 동화의 본질이 인간 본래의 순수성을 대변한다는 논리에 근거한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는 '동화가 없는 시대' 다. 모든 가치관이 전도되고 변질된 탓이다.

영국의 한 무명 여류작가가 쓴 '해리 포터' 시리즈가 전세계 28개 언어로 1백30개국에서 출판돼 1천만부 이상이 팔렸고, 한국에도 상륙했다는 소식(본지 11월 22일자 20면)이다. 미혼모로서 딸을 낳고 생계가 어려워 쓰기 시작했다는 조앤 롤링은 이제 스스로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쥔 신데렐라가 되었다. 온갖 멸시와 학대 속에 가난하고 불우하게 살아가던 11세 소년이 신비로운 마법의 모험을 경험하면서 영웅이 된다는 이 소설은 이 시대 동화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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