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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사이버 신천지 전쟁 ② 인터넷 한국, 무선 후진국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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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국내 최대 통신업체인 KT의 이석채 회장은 지난 14일 ‘FMC 쿡앤쇼’ 발표회에서 휴대전화기를 한 손에 든 채 새로 출시한 유·무선 통합 서비스(FMC)를 소개했다. 그는 “유선이든, 무선이든 음성통화로 이익을 내는 시절은 갔다. 앞으로 무선 데이터 기반의 컨버전스 서비스를 공격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다른 분야와 달리 인터넷에선 후발주자로 얕보던 일본은 이미 모바일 기반을 도입해 ‘선(線) 없는 사이버 세상’의 강국으로 거듭나고 있다. 우리는 유선 인터넷의 성공에 도취돼 태곳적 신비를 간직한 남태평양 ‘갈라파고스 섬’에 갇혀 있었다. 이제야 해외 트렌드에 눈을 뜨고 신발끈을 고쳐 매기 시작했다. 무선 인터넷의 가치를 모른 건 아니었다. 한국은 ‘와이브로(해외명 모바일 와이맥스)’ 같은 차세대 모바일 인터넷 기술을 수년 전 개발한 나라다. 임주환 한국디지털케이블연구원장은 “국내 통신업계가 내수 전화시장에 안주하는 바람에 이런 첨단 기술을 제대로 써먹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유선 강국’의 명과 암=1982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와 경북 구미의 한국전자기술연구소를 연결한 ‘SDN’이 국내 인터넷의 시원(始原)이다. 한국통신(현 KT)이 94년 아시아 최초로 상용 서비스 ‘코넷(KORNET)’을 선보이면서 인터넷은 대중화의 길에 들어섰다. 인터넷 이용자 3536만 명(세계 8위),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1594만 명(세계 7위)에 달하는 사이버 강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런 유선의 영광 뒤에는 무선의 그늘이 상존했다. 메릴린치의 조사(지난해 4분기 기준)에 따르면 한국의 월 평균 휴대전화 사용시간은 320분으로 독일(100분)의 세 배 이상, 일본(140분)의 두 배 이상이다. 그런데 월 평균 통신요금 대비 데이터 요금 비중은 한국이 17%로 일본(41%)이나 미국(25.5%)·홍콩(26.7%)에도 뒤진다. 시속 100㎞로 이동하며 초고속인터넷을 쓰는 와이브로를 2006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으나 4년 동안 가입자는 30만 명에 머물렀다.

왜 그럴까. 세계 최고 수준의 유선인터넷과 휴대전화 음성통화 경쟁력이 오히려 무선 인터넷 성장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이통사들은 음성통화 수익이 줄어들까봐 모바일 인터넷의 도입을 외면했다. 반면 우리보다 초고속망 기반이 부족했던 일본은 몇 년 전부터 무선인터넷 활성화에 나섰다. 일본의 무선인터넷 이용자는 지난해 말 현재 9000만 명으로 보급률이 73%에 달한다.


◆이제는 무선인터넷=업계와 정부도 최근 무선인터넷에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무선인터넷 활성화에 걸림돌이던 한국형 무선인터넷 플랫폼(위피)의 단말기 탑재 의무화를 폐지했다. 그러자 통신업계도 노트북은 물론 휴대전화로도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서비스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KT·SK텔레콤 등 통신업계는 아예 주력사업의 무게 중심을 무선인터넷으로 옮긴다는 계획이다. KT는 1월 이석채 회장이 CEO로 취임한 뒤 6월 KTF 합병에 이어 이달부터 유·무선 인터넷 융합(FMC)서비스에 공을 들이고 있다. FMC는 무선인터넷 지역에선 휴대전화기로 값싼 인터넷전화(VoIP)를 걸 수 있는 서비스다. SK텔레콤도 유·무선 통합상품 ‘FMS’를 발표했다. 특정 지역에서는 인터넷전화 요금으로 휴대전화를 쓸 수 있는 요금제다. 무선인터넷 가능성은 이미 입증됐다. LG텔레콤이 지난해 4월 선보인 ‘오즈’는 척박한 국내 무선인터넷 시장에서 홀로 분투해 최근 가입자 90만 명을 넘어섰다.

무선인터넷 시대는 최근 인천 송도 자유무역 신도시에서 실현되기 시작했다. 최첨단 주상복합건물인 ‘더샾 퍼스트월드’는 휴대전화로 집 안의 온도·조명을 관리하고 교통·교육 정보 등을 얻는다. 강성욱 시스코 아시아총괄 사장은 “도시 전체를 유·무선 인터넷 기반의 ‘스마트 시티’로 만드는 건 송도가 처음”이라며 “ 한국이 새로운 사이버 시대에도 인터넷 강국의 영예를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특별 취재팀=이원호·김창우·심재우·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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