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준 쌍용건설 회장, ‘문제없다’는 보고 절대 믿지 않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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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그러면 오늘 오후 5시에 만납시다.” 잦은 해외 출장 때문에 취재 일정 잡는 데 차질이 빚어지자 김석준(56) 쌍용건설 회장은 곧바로 시간을 정했다. 이때가 21일 오후 2시, 불과 세 시간 뒤에 만나자는 연락이었다. 김 회장과 인터뷰는 이렇게 전광석화처럼 이뤄졌다. “현장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그의 경영 스타일을 엿볼 수 있었다. 쌍용건설이 입주해 있는 서울 송파구 신천동 대한제당 빌딩 10층 임원 회의실, 김 회장은 서류 뭉치 서너 개를 들고 들어왔다. 세 시간 가까이 계속된 인터뷰에서 그는 쌍용건설에 대한 ‘열정’, 한국 건설업의 진로, 쌍용그룹 해체에 대한 소회 등을 진지하게 토해냈다.

-해외 부문 실적이 계속 좋아지고 있다.
“해외 사업만 보면 국내 7∼8위권이다. 쌍용은 일찌감치 해외에 진출했다. 우리가 미국에 진출한 해외 부동산 투자 1호 회사다. 1988년 미국 디즈니랜드 인근에 매리어트 호텔 건축을 진행했다. 이후 미국 서부에만 세 곳에 호텔을 지었다.”

-최근 싱가포르에서 52도 기울어진 독특한 디자인의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의 상량식을 했는데.
“모두 9000억원짜리 공사다. 호텔·쇼핑몰·컨벤션센터 등이 들어가는 복합 리조트인데 국내 건설사가 해외 건축 부문에서 수주한 최대 규모 프로젝트다. 건축물을 도면대로 만든다는 것은 설계자의 목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공사가 끝났을 때 얘기다. 공사 과정에서 안전성과 공기를 맞추는 것은 시공사의 책임이다. 축적된 경험과 기술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숫자(낙찰가격)’만 잘 써서 되는 일이 아니다. 사실 우리가 최저가를 써낸 게 아니었다. 기술 협상이 끝난 다음 ‘값을 깎을 거면 관두라’고 했다. 사실 발주처도 시간이 돈 아닌가. 여기에 더해 공기 단축하는 조건으로 보너스도 좀 받았다(웃음).”

-쌍용은 싱가포르 시장에서 특히 강하다.
“싱가포르는 서울보다 작은 나라지만 연간 건설 시장 규모가 33조원에 이른다. 한국(약 110조원)에 비해 건설 단가가 높다는 얘기다. 현재 계약됐거나 시공 중인 공사만 따지면 우리가 현지에서 2위쯤 한다. 어느 나라든지 택시 운전사에게서 그 회사 얘기가 나오면 성공한 것이라고 하는데 싱가포르 택시 기사에게 ‘한국’ 하면 삼성·현대와 함께 쌍용이 세트로 나온다.”

-이런 저력은 어디서 나오나.
“발주처 최고 경영진에게 우리 공사 현장을 와서 보라고 권유한다. 실제로 많은 이가 국내 우리 현장을 다녀갔다. 지하철 9호선 공사 현장에서 15㎝ 위에 3호선이 지나가고 그 위에 상가가 있다고 하자 모두 깜짝 놀라더라. 이렇게 와서 보면 ‘꾼’들은 그 실체를 안다. 또 공사 수주전이 있을 때는 직접 발로 뛴다. 내가 자주 하는 말이 ‘레드 카펫 깔아놓고 부르지 말라’는 것이다. 일 처리는 아래서 다 해놓고 나중에 회장이 와서 폼 재게 하지 말라는 뜻인데 어려운 일이 생길수록 같이 뚫어야 한다. 대형 공사 수주 영업을 할 때는 지금까지 실적은 물론 개인 이력서, 회사 조직도, 주주 구성까지 모두 공개한다. 2조원 가까이 매출을 올리는 회사의 단출한 조직에 발주처가 또 한번 놀란다. 10여 년 전부터 1인 다역을 해내고 있어서다.”

-현장을 자주 찾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말이 나오면 현장에서 땀 흘리는 직원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사실 국내 현장은 자주 못 간다. 워낙 해외 사업장이 많아서다. 상대적으로 공사 규모가 크고 수주 단계부터 개입해야 해서 그렇다. 샌즈 호텔의 경우는 발주처와 월례 미팅을 한다. 현장에 가서는 ‘골칫거리를 내놓으라’고 주문한다. 나는 ‘문제없다’는 보고를 절대 믿지 않는다. 어디든 문제없는 현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손으로 문제를 찾아내야 해결할 수 있다. 발주처도 마찬가지다. 샌즈 호텔에는 영국·미국·호주 등에서 온 내로라하는 기술진 100여 명이 근무한다. 서류와 도면이 실시간으로 사내 통신망에 뜬다. 이런데 어떻게 문제를 숨길 수 있겠나. 이런 투명한 현장 덕분에 공사도 안전하게 진행되고 공기도 단축할 수 있는 것이다.”

고(故) 김성곤 쌍용 창업회장의 차남인 김 회장은 83년 쌍용건설 사장을 맡았다. 98년 그룹이 좌초했지만 그는 임직원과 채권단의 요청으로 다시 이 회사 회장에 복귀했다. 그만큼 임직원의 그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이다.

-82년 이후 그룹 회장을 맡았던 4년여를 빼면 줄곧 건설업만 하고 있는데.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다. 건설업은 실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웃으면서) ‘그거 내가 한 거야’라고 말할 수 있지 않나.”

-건설업의 특징은 무엇인가.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령 어떤 정보기술 제품이 기술과 마케팅을 앞세워 삽시간에 세계 시장을 휩쓸 수는 있다. 건설업은 그게 절대 안 된다. 실적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입찰에 초청도 받지 못한다. 지금도 건설협회에서 시공능력 순위를 매긴다. 정부나 단체에서 순위를 매기는 업종이 어디 또 있나.”

-건설업을 ‘피플 비즈니스’라 정의했는데.
“ ‘사람 비즈니스’가 아니라 ‘사람들이 하는 비즈니스’라는 뜻이다. 건설은 혼자 잘나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팀으로 가야 한다. 요즘은 팀워크는 기본이고 각 분야에서 우수한 인재가 리드도 해야 한다.”

-요즘 건설 시장에서도 중국 파워가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최근 파키스탄 부두 공사 때 일이다. 우리가 4억 달러를 적어냈는데 중국의 한 회사는 그 52%를 적어내더라. 그런 가격으로는 도저히 싸움이 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중국은 국내 시장 규모가 워낙 커 (해외 부문의) 손실을 감내할 수 있다. 인력 등 자원 조달도 쉽고 인건비도 적게 든다. 장비·기자재도 이제는 자체적으로 조달 가능하다. 또 자원 외교 차원에서 중국 건설회사는 가격을 무시한 ‘영역 확충’을 하기도 한다. 중국에서 시공 사업을 하기도 어렵다. 사실 그 넓디넓은 중국 시장에서 한국 업체가 못 들어간 유일한 업종이 건설업이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 건설업은 어떻게 포지셔닝해야 하나.
“미국에서 발행하는 ENR이라는 건설 전문지에서 지난 8월 전 세계 건설사를 대상으로 자국을 제외한 해외 사업의 수익성을 평가한 적이 있다. 1∼5등까지 선진국 업체가 차지했다. 현대건설이 52위, 삼성엔지니어링이 53위였다. 쌍용은 93위였다. 자동차나 조선은 빅5 안에 들고 있는데 건설업은 왜 안 되나. 이것이 우리의 숙제다.”

그제야 김 회장은 들고 온 서류 뭉치를 꺼냈다. 선진 건설 업계의 신경영 트렌드, 친환경 건물의 경제성 등에 대한 자료였다. “요새 건설업은 EPC(Engineering, Procurement & Construction)가 대세다. 설계부터 구매·시공 등 모든 과정을 일괄 수행하는 것이다. 해외 건설·플랜트 시장의 70∼80%가 이렇다. 그런데 이젠 EPC도 리스크가 있어서 하지 않으려고 한다. 지난달 인천대교 건설 투자를 성사시킨 영국 에이맥(AMEC)의 사미르 브리코 회장을 만났는데 ‘이제는 국가 단위의 건설 프로젝트 컨설팅 쪽으로 간다’고 말하더라. 캐나다에선 오일샌드(중질유가 포함된 모래) 개발에 나서고, 북해 유전 개발에도 투자한다.”

-건설업이 지식산업으로 진화한다는 얘기인가.
“바로 그거다. 자동차를 봐라. 엔진과 핸들, 네 바퀴는 그대로다.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전자제품화하고 있다. 건설업도 마찬가지다. 80년 전 뉴욕 맨해튼에 빌딩을 올릴 때나 지금이나 공법은 유사하다. 그러나 친환경 기술, 금융과 연계한 비즈니스가 계속 등장하고 있다. 가령 이제 대형 건축물의 경우 LEED(미국 그린빌딩협의회에서 친환경 기준에 따라 등급을 부여하는 시스템) 인증이 없으면 프레젠테이션도 못 한다. 크게 보면 건설업은 첨단기술의 컨버전스다.”

-한국은 무엇이 더 필요한가.
“경험과 네트워킹, 분석·판단력이 있어야 한다. 파이낸싱 능력도 아쉽다. 쉽게 말해 시골 유치원 공사하던 업자가 수도권에 아파트 짓겠다고 하면 은행에서 돈을 빌려주겠나.”

-그렇지만 아직도 건설업은 복마전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싱가포르에서는 1조원짜리 지하철 공사를 입찰에 부치는 데 3∼5개월이 걸린다. 심의기관에서 청문회를 열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달달 볶는다. 설계·시공·안전·대민관계까지 직원이 수십 번 불려나가 인터뷰를 한다. 이런 심의를 통과하고 난 후에야 가격을 논의한다. 물론 이런 시스템을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지금처럼 1등부터 50등 업체를 똑같이 줄 세우는 한국식 수주 방식은 하향 평준화를 부르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다시 화제를 쌍용으로 돌렸다. 쌍용은 도로·지하철 등 토목 공사는 물론 ‘예가’라는 브랜드로 주택 사업에도 진출해 있다. 김 회장은 국내와 해외 사업 비중은 55대 45쯤 된다고 소개했다.

-올해 실적을 전망하면.
“회계 기준을 보수적으로 잡고 있다. 2조원을 넘길 수도 있겠지만 1조8000억원으로 했다. 2015년까지 업계 7위, 수주 9조원, 매출 7조원, 영업이익 7%를 내는 것으로 목표를 잡았다. 그래서 ‘7977’인데 잘될 것이다.”

-워크아웃 겪을 때 고충이 많았겠다.
“특히 국내 재개발·재건축 사업에서 ‘내일 모레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회사’라는 흑색선전이 극심했다. 이런 악조건에서 싸워야 했다. 그나마 인수합병(M&A)이 다반사인 해외에서는 사정이 나았다. 아까 말한 대로 주주 명부까지 가져가 회사 사정을 설명했는데 대개는 쉽게 이해하더라.”

-쌍용건설 매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자산관리공사(캠코)가 주관하는 문제라서 말할 입장이 아니다. 현재 쌍용건설은 캠코가 38%, 우리사주조합이 17% 지분을 갖고 있다. 향후 우리사주는 주식 25%를 추가 매수할 수 있다.”

-캠코와 관계는.
“대주주로서 경영 실적을 철저하게 평가한다. 그런 시스템이 잘 돼 있다. 경영에는 간섭하지 않는다.”

-인재 유출을 걱정한 적은 없나.
“이런 면에서 쌍용은 독특한 회사다. 이직률이 3%가 안 된다(회사 측에 따르면 지난해 이직률은 2.95%였다. 300인 이상 대기업의 평균 이직률은 13.2%다). 업계 최저다. 그렇다고 ‘고인 물’은 아니다. 채권은행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죽어도 뽑아야 한다’고 해서 2000년 이후 신입사원 공채로 454명 뽑았다. 현 임직원 1100여 명 가운데 40%쯤 된다. 이들이 피플 비즈니스의 새로운 근간이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가장 어려운 일은.
“현업에서 부닥치는 일은 문제를 드러내고 등 두드리면 대개 해결책이 나온다. 그런데 제일 스트레스는 연말 인사다. 이 문제는 마지막까지 혼자 결정해야 한다. 인사는 정말 중요하다. 당사자에게도 중요하지만 주변의 사기가 결정된다. 전체 조직이 출렁일 수도 있다. 가장 괴로운 고민거리다.”

-쌍용은 한때 국내 4위 재벌이었으나 외환위기를 견뎌내지 못했다.
“나는 그룹의 회장을 지내기도 한 사람이다. 패장(敗將)이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기업의 속성상 흥과 망이 있다. 쌍용은 다만 나름대로 ‘모범답안’이었다고 생각한다. 외환위기 직후 당시 정부가 내놓은 방안대로 쌍용의 해체가 진행됐다. 자발적 M&A, 외자 유치, 워크아웃의 수순을 따랐다. 쌍용양회는 태평양시멘트, 에쓰오일은 아람코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쌍용자동차는 3조4000억원 부채 가운데 1조7000억원씩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대우에 넘겼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도 않았다. (친형인) 김석원 당시 그룹 회장은 정도를 따랐다.”

-다음 인터뷰할 분을 추천해 달라.
“앰배서더호텔 그룹의 서정호 회장을 추천한다. 50여 년 전 작은 여관에서 출발한 앰배서더는 이제 전국 10여 개 체인을 경영하면서 호텔업으로 일가를 이뤘다. 서 회장은 2세 경영인으로 호텔경영학을 전공하고 제대로 호텔업을 하는 분이다.”



● 다음은 서정호 앰배서더호텔 회장입니다.

허귀식·이상재 기자 ksline@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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