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어울리는 누룩향, 디저트로 그만인 달착지근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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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호 22면

16일 오후 3시 중앙일보 중앙SUNDAY편집국에 모인 다섯 명의 술 전문가들이 막걸리의 맛을 보고 있다. 최정동 기자

국내에서 가장 잘 팔리거나 막걸리 품평회에서 입상한 쌀막걸리 6종과 쌀 이외의 재료로 만든 지역 특산 막걸리 4종이 대상이다. 중앙SUNDAY가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불고 있는 막걸리 열풍의 원인과 막걸리의 세계화 전망 등을 알아보기 위해 마련한 행사다.

5명 맛의 달인들, 막걸리를 규정하다

참석자들은 먼저 막걸리 품평을 어떤 방식으로 할지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주최 측이 제시한 건 농림수산식품부의 전통주 품평회 예심에 올랐던 7종과 시중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대중주 3종(생막걸리·살균막걸리 포함 6가지)을 각각 블라인드 테이스팅(제품명을 가리고 맛을 봄)을 한 뒤 평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허 교장이 대중주라는 개념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막걸리를 대중주와 전통주로 구분하는 건 공식적인 분류가 아니고 객관성도 없다”고 했다. 허 교장은 “지난주 끝난 농식품부 품평회에서는 전통주 개념을 국내산 쌀을 50% 이상 사용해 빚은 술로 정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외국산 쌀을 원료로 사용하는 서울탁주의 장수막걸리, 국순당의 생막걸리, 이동주조의 이동막걸리 등은 출품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서울탁주는 서울·경기도 지역 막걸리 판매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양조업체 단체다. 따라서 전통주와 대중주로 구분하기보다는 쌀을 원료로 쓴 막걸리와 쌀 이외의 다른 재료를 원료로 쓴 막걸리로 구분해 테이스팅을 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정리됐다. 참석자들 가운데 유 부회장은 국내산 쌀 100%라고 표시한 제품 가운데 실제 그런 것이 얼마나 되는지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입산 쌀로 만드는 제품은 지금처럼 저렴한 가격에 팔리도록 놔두고 실제 국내산 쌀을 사용해 가격이 비싸더라도 명주다운 명주를 만드는 방향으로 가야 막걸리의 세계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시간여에 걸친 토론이 끝나고 오후 4시 본격적인 블라인드 테이스팅에 들어갔다.

테이스팅은 다른 재료가 들어가지 않은 쌀막걸리 6종부터 했다. 1번 국순당 생막걸리, 2번 이동막걸리, 3번 입장탁주, 4번 부산 금정산성막걸리, 5번 서울장수막걸리, 6번 참살이탁주 순으로 테이블 위에 번호가 매겨진 6개의 컵에 따랐다. 참석자들은 한 사람당 여섯 가지의 막걸리를 시음하고 각각의 맛과 향을 체크리스트에 표시했다. 편의상 국순당이 자사 제품을 평가할 때 사용하는 양식을 이용했다. 향은 강도와 과실·쌀·누룩·산·효모 냄새의 정도를, 맛은 강도와 단맛·신맛·쓴맛·청량감·질감(걸쭉함) 등 오감의 정도를 측정하는 것이다. 40여 분간의 시음에 이어 품평이 진행됐다.

자연스럽게 허 교장이 사회를 맡았다. 그는 “여섯 가지 제품 가운데 전통 누룩을 사용하는 건 부산 산성막걸리뿐이다. 나머지 다섯 가지는 개량형이다. 그 느낌의 차이가 있다고 보는가. 개성 있는 술이 어떤 것이었나”라고 물었다. 유 부회장은 “3번(입장탁주)이 개성 있었다. 과실향이 많이 느껴졌고 산도도 좋았다. 제일 편한 느낌이 든 건 1번과 6번이었다. 이 중 6번은 단맛을 좀 줄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우리 밀과 이천쌀, 하얀색 연꽃으로 술을 빚은 적이 있다. 그 술과 시중에서 산 쌀막걸리를 머리맡에 두고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보니 담근 술에는 초파리 30여 마리가 빠져 있었으나 시중 막걸리에는 2마리뿐이었다”고 말했다.

시중 막걸리에는 인공 감미료가 들어 있다는 증거라고 그는 설명했다. 유일한 외국인 소믈리에인 아바디 대표도 3번의 손을 들었다. “3번이 가장 과일향이 많이 느껴졌고 산미가 거부감이 없었다. 인공적 산미가 아닌 자연적 산미였다. 1번과 6번도 좋았다. 4번은 누룩향이 너무 강하다. 막걸리가 전반적으로 달착지근하다. 맛탕과 꿀타래, 유자차 등 디저트하고 어울릴 듯하다. 해물매운탕과 같이 먹어도 좋을 것 같다. 막걸리 원주가 알코올 도수가 15~16도라고 하는데 그 정도면 식전주로도 괜찮다. 구수한 누룩향이 나 빵과도 어울릴 수 있을 것 같다. 막걸리는 다양한 음식과 조화가 잘될 것 같은 술이다.” 아바디 대표는 2년 전부터 한국에 정착해 와인 시음회와 이벤트, 컨설팅을 하는 회사를 운영 중이다.

여성 소믈리에인 이윤경 매니저는 사람들과 다른 의견을 내놨다. 이씨는 “1, 2번의 맛이 거부감이 제일 없었다. 3번은 오히려 단맛이 강하고 향이 인위적이었다. 걸쭉해 식사할 때 반주로 안 어울릴 것 같다. 단맛을 줄이고 청량감을 높였으면 좋겠다. 4번은 밀도는 높았으나 술이 따로 논다는 느낌이었다. 5번은 단맛과 향이 걸렸다. 수수함이 필요한 것 같다. 6번은 떫은 감 맛이 났다. 쓴맛 때문에 청량감이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국순당 신 부소장은 “산성막걸리가 전통 막걸리에 가장 근접한 술인데 환절기 때 누룩이 불안정해지면 맛이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각자 품평이 끝나고 두 번째 테이스팅이 이어졌다. 같은 방식대로 1번 춘향허브막걸리, 2번 자색고구마막걸리, 3번 울금막걸리, 4번 소백산검은콩막걸리가 컵에 채워졌고 블라인드 테이스팅이 진행됐다.

“이번에 테이스팅한 것은 쌀 외에 약재나 특산물이 들어간 막걸리들이었다. 우리가 90년대 이전에 먹어 보지 못한 신세대 막걸리가 속속 나오고 있다. 시금털털한 막걸리 맛의 구태는 벗어났으나 맛이 얇아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어떻게 평가하나.”(허시명 교장)

“막걸리 제조 시 가장 중요한 건 술 재료의 특징을 살리는 것이다. 주객이 전도돼서는 안 된다. 검은콩을 넣은 막걸리인지, 막걸리 향이 첨가된 검은콩 주스인지 확연히 구분이 가도록 만들어야 한다. 소비자의 입맛에만 맞추려다 본질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본다.”(유병호 부회장)

“일본 사케나 와인을 보면 누룩과 포도만 가지고 수천 가지 술을 만든다. 쌀과 누룩, 물 세 가지만 갖고도 수천 가지 맛의 막걸리를 만들 수 있다. 막걸리가 집에서 담그는 가양주에서 산업화 단계로 걸음마를 떼기 시작하는 시기에 등장한 다양성의 표현이라고 본다.”(신우창 부소장)

“3번(울금막걸리)에선 풀잎 냄새가 났다. 화이트와인 중에 소비뇽 블랑이 있는데 파전이나 나물과 어울릴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4번은 텁텁한 맛이 나 청량감이 떨어진다. 1번은 향이 강직했고 2번은 첨가물 때문인지 맛과 향이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이윤경 매니저)

참석자들은 대체로 신종 막걸리들이 20대 젊은 층의 입맛에 어필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막걸리의 맛보다 거기에 들어가는 지역 특산물을 강조하다 보면 본래의 맛을 잃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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